미국의 2대 대통령인 존 애덤스는 1801년 퇴임을 불과 두 달 남겨두고 인사 발령을 냈다. 당시 국무장관인 존 마샬을 연방 대법원장으로 지명한 것이다. 당시만 해도 이것이 미국 역사를 바꿔놓을 애덤스의 최대 결정이 되리라고 생각한 사람은 없었다.
그가 대법원장 자리에 앉았을 때만 해도 연방 대법원의 위상은 초라했다. 애덤스는 원래 초대 대법원장인 존 제이에게 다시 대법원장 자리를 맡아 줄 것을 제의했으나 제이는 그 자리가 너무 별 볼 일 없다는 이유로 거절했다.
그러나 마샬은 미 역사상 최장인 34년 동안 대법원장으로 일하면서 연방 정부와 연방 정부 내에서 대법원의 위치를 새로 바꿔 놨다. 그가 내린 대표적인 판결인 ‘마베리 대 매디슨’ 사건을 통해 그는 행정, 입법부에 대한 사법부의 우위를 확립했다. 대법원이 법률에 대한 위헌 심사권을 갖고 있음을 밝힘으로써 대통령과 의회가 만든 어떤 법률도 무효화시킬 수 있다는 선례를 남긴 것이다. 결국 법의 유무효는 최종적으로 대법원이 결정한다는 것이 이제는 확고한 원칙으로 자리 잡았다.
대공황 때 취임한 프랭클린 루즈벨트는 모처럼 경기를 살리기 위해 만든 여러 뉴딜 관련법이 대법원에 의해 잇따라 무효화되자 화가 난 나머지 9명이던 연방 대법관 수를 15명으로 늘린 후 자기를 지지하는 사람으로 채우려다 역풍을 맞고 실패한 선례도 있다. 대통령이 국정을 수행하는 데 대법원의 협조가 필수적임을 보여주는 사례다.
대통령이 지명한 대법관 후보는 연방 의회가 그대로 따라주는 것이 오랜 관행이었다. 이것이 깨진 것은 레이건 행정부 때 로버트 보크가 상원의 인준을 받지 못하면서부터다. 테드 케네디 상원의원 등은 보크의 보수적인 견해를 문제 삼아 그를 성토했고 그는 결국 인준에 실패했다. 이와 함께 ‘법관 후보를 공격해 인준을 받지 못하게 하다’라는 뜻의 ‘Bork’라는 새로운 단어가 등장했다.
현재 연방 대법관인 클레런스 토마스도 ‘보크’ 당할 뻔하다 자신의 인준을 거부하는 것은 인종차별적인 행위라는 쪽으로 몰아가 간신히 대법관 자리에 앉았다. 조지 W 부시 행정부 때도 많은 보수파 판사들이 지명을 받고도 인준은커녕 아예 청문회조차 열지 못한 채 옛날 자리에 머물러 있던 일이 종종 있었다.
오바마 대통령이 푸에르토리코 계 여성 판사인 소니아 소토마요를 대법관에 지명하면서 보수파의 반발이 거세지고 있다. 그가 판사는 약자에 대한 “동정심”을 가져야 한다고 말한 것과 소토마요가 “라틴계 여성으로 생활한 경험이 백인 남성보다 훌륭한 판결을 하는 것을 가능케 한다”고 발언한 것이 시비 거리가 되고 있다. 법의 여신이 눈을 가린 채 판결을 하는 것은 빈부나 인종에 관계없이 공정한 판결을 하라는 취지라는 것이다.
그러나 과연 인간이 자기가 겪은 것을 초월해 신처럼 공평무사한 판결을 할 수 있을지는 의문이다. 지금까지 주로 법의 집행 대상이던 소수계가 판결의 주체가 되는 것은 분명한 역사적 발전이다. 과거 백인 남성의 전유물이었던 대법원에 여성 라티나의 시각이 들어가는 것을 부정적으로만 볼일은 아닌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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