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 전통 현악기에는 안족(雁足)이라는 장치가 있다. ‘기러기 발’이라는 뜻으로, 모양이 기러기의 발과 비슷해서 붙여진 이름이다. 바로 거문고나 가야금의 줄을 받치는 받침대들이다.
연주자들은 이 받침대, 안족을 이리저리 옮김으로써 음의 높낮이를 조절한다. 그런데 만약 안족을 아교로 꽉 붙여 고정시켜 버린다면 어떻게 될까. 더 이상 음을 조절할 수가 없게 되면서 악기로서의 기능을 상실하게 된다.
이렇게 비파나 거문고의 기러기발을 아교로 붙여놓았다는 뜻의 고사성어가 교주고슬(膠柱鼓瑟) 혹은 교주조슬(膠柱調瑟)이다. 생각이 딱 고정되어서 도무지 융통성이 없는 고지식한 상태를 말한다.
노무현 전 대통령을 추모하는 열기로 한반도가 뜨겁다. 미주 한인사회 역시 분향소를 설치하고, 추모위원회를 구성해 추모제를 준비하며 조문 행렬에 동참하고 있다. 한 나라를 이끌던 분이 불행하게 생을 마감한 사건 앞에서, 평소 그에 대한 지지나 반대를 떠나 우선 아픔이 밀려드는 것은 자연스런 현상이다. 죽음 앞에서는 누구나 숙연해지며 옷깃을 여미고 예를 표하는 것이 인지상정이다.
그런데 조문기간 중 노 전 대통령에 대한 극단적 호 불호가 여과 없이 불거져 눈살을 찌푸리게 하는 일들이 있었다. 바로 교주고슬의 케이스들이다.
가장 눈에 띈 것은 몇몇 노사모 회원들의 과격한 행동이다. 멀리 봉하마을까지 찾아간 한승수 국무총리, 박희태 대표 등 한나라당 지도부가 조문도 못한 채 마을에서 쫓겨났고, 일부 정치인들은 물병과 계란 세례까지 받았다. 그런가 하면 전두환 전 대통령이 보낸 화환은 물론 현직 대통령이 보낸 화환도 땅바닥에 내팽겨 쳐지고 발로 짓밟혔다. 추모의 자리에서는 일어나서는 안될 예의 없는 행동들이었다.
그런가 하면 교계의 원로인 김진홍 목사는 지난 26일 뉴라이트 회원들에게 ‘노무현 전 대통령의 자살에 대하여’란 이메일을 보내 논란이 되고 있다. 이명박 대통령의 측근인 그는 뉴라이트 전국 연합 상임의장을 지낸 바 있다.
그는 회원 10만 여명에게 보낸 이메일에서 “더러는 오죽 억울하였으면 그런 죽음을 택하였을까 하고 동정적인 발언을 하는 분도” 있다며 “감당할 자질이나 능력이 없으면 굳이 지도자에 오르려 들지 말라”고 했다. 또 “억울하고 힘들기 때문에 자살을 한다면 우리 사회에 자살하여야 할 사람들이 얼마나 많겠습니까”라며 “비록 전직이지만 대통령직을 거친 분이 그런 죽음을 선택하는 것은 무책임”하다고 했다.
그로서는 충분히 가질 수 있는 의견이다. 하지만 그렇다 하더라도 공인으로서 조문기간 중에 할 말은 아니었다. ‘그는 틀렸다’는 생각이 너무 깊다 보니 장례식 끝날 때까지 만이라도 입을 다무는 예를 갖출 수가 없었던 모양이다.
‘내편 아니면 원수’라는 극단적 이분법으로 한국사회의 병이 깊다. 교주조슬의 어리석음을 이제는 좀 넘어서야 하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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