큰일 났다. 철저히 외부와 단절되어 버린 듯한 두려움. 어떻게 손을 써볼 겨를도 없이 죽어가고 있었다. - 바로 나의 낡은 핸드폰이 말이다.
2005년에 통신사를 바꾸면서 받은 공짜 폰. 그러니 햇수로는 5년, 만으로 4년은 족히 써온 나의 핸드폰. 요즘 세상에 누가 핸드폰을 5년이나 쓰느냐고 할지 모르지만 이게 처음도 아니다. 대학교 1학년 때 PCS폰을 시작으로 내손을 거쳐 간 핸드폰은 5개. 당시 한국에서 짧은 기간밖에 서비스를 하지 않았던 PCS폰을 제외하면 평균 사용기간은 3-4년. 계약기간이 끝나면 얼마든지 최신형 핸드폰으로 바꿀 수 있으니, 오래된 구식 전화기를 쓰는 나 같은 사람은 둘 중 하나일 게다. 아주 게으르거나 아니면 자원을 낭비하지 않기 위해 애쓰는 사람. 사실 나는 전자에 가깝다. 액정화면이 나가지 않았더라면 귀찮아서라도 1-2년은 더 썼을 것이기 때문이다.
이거 L사에 연락하면 우수 고객 표창이라도 받겠는데요…아 저희 가게 오픈한 직후에 오셨었네요. 고객 번호가 000이네요. 지금은 00000대인데. 거의 골동품 수준인걸요. 기념으로 보관하세요.
아주 오랜만에 들른 핸드폰 가게에서 나눈 대화 중 일부다.
곰곰이 생각해본다. 과연 전화기만의 문제일까. 오래된 물건. 오래된 친구. 오래된 기억. 오래된 노래. 오래된 책. 그러고 보니 나는 꽤나 오래된 것들을 좋아한다. 아주 가끔씩 손때 묻은 일기장이나 오래된 편지를 꺼내 보며 흐뭇해하기도 하니 말이다.
아직도 난 6년 전에 산 끄윽끄윽 거리는 노트북을 쓰고 있고, 10년 된 차를 몰고, 또 오래 전에 산 옷을 아끼기도 한다. 난 아마도 광고회사에 맞지 않는 사람일지도 모른다. 광고는 새로운 상품에 대한 끊임없는 소비를 밑천으로 하는 장사이므로. 차 광고 만드는 일을 하면서 10년 된 차를 탄다는 건 너무 아이러니한 조합이긴 하다.
그렇다고 내가 필요한 것만 구매하는 아주 현명한 소비자란 소리는 아니다. 몇해 전에는 1년 동안 한달에 한두 켤레씩 신발을 사재기도 했고(여전히 가격표가 붙은 채로 박스 속에 고스란히 모셔져 있는 몇 켤레의 디자인은 기억마저 가물가물하다), 같은 스타일의 셔츠는 도대체 몇 장이며 가방은 또한 몇 개나 되는가. 그 중 내가 매일 편하게 신는 신발과 가방은 두세개에 불과하다. 견물생심이야 어찌할 수 없다 해도 지금 내가 가지고 있는 것들을 좀 돌아볼 필요가 있지 않을까. 쇼핑을 할 때도 이것이 정말 필요해서 사는 물건인지 아님 그저 또 하나의 짐을 늘리기 위한 것인지.
최첨단 시대에 최신식의 무언가를 가장 빠르게 손에 넣을 수 있는 쇼핑 천국이라 불리는 나라에 살면서, 덜 갖고, 덜 사고, 덜 입자고 하는 말이 무슨 새마을 운동처럼 고루하게 들릴지 모르겠다. 난 대단한 환경론자도 아니고, 무소유를 설파하신 법정 스님처럼 다기 몇벌과 몇묶음의 책을 전 재산 삼아 자연과 더불어 살지 못할 것이며, 많은 것을 가졌지만 고스란히 없는 이들에게 다 주고 당신은 움막 같은 흙집에서 가난하게 살다 돌아가신 권정생 선생처럼 살지도 못할 것이다. 다만 내가 가지고 있는 것을 좀 더 아끼고 수명이 다할 때까지 정 붙이고 사는 것. 그것이 내가 할 수 있는 최소한의 그리고 최선의 노력이 되지 않을까 하는 맘이다.
유행에 뒤쳐지거나 구질구질하게 살자는 얘기는 아니다. 적어도 사람의 멋이란 그 사람에게서 흘러나오는 기운이라 믿는다. 비싼 옷을 입고, 멋진 차를 몰아도 마음이 가난해 보이는 사람이 있고, 많이 갖지 않아도 풍요롭게 그리고 멋지게 살아가는 사람들이 있다. 당신은 어느 쪽을 택할 것인가.
김진아/ 캠벨 이웰드 시장분석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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