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는 언제 감동하는가? 최근에 감동받은 적이 있는가? 있었다면 무엇에, 왜 감동했는가? 언제 마지막으로 감동했었는지조차 가물가물한가?
얼마 전 한국에 있는 가족이 방문해서 한달 여를 보내고 돌아갔다. 그 한 달 간 거의 하루도 빠짐없이 LA시내, 근교, 라스베가스, 그랜드 캐년 등 많은 곳을 돌아다녔다. 내가 전에 가 본 곳도 있고 처음이었던 곳도 있다. 미국을 처음 방문한 식구들은 새로운 환경과 문화를 경험하며 즐거운 시간을 보냈다.
산타모니카 비치를 본 언니와 동생은 무척이나 감동 받은 눈치였다. 연방 사진을 찍어 대고 작은 탄성을 지르고…아름다운 노을과 야자수. 그리고 바다내음 나는 캘리포니아의 겨울바람. 그 속에서 이어폰을 끼고 조깅하는 미국인들 - 드라마 ‘90210’의 한 장면 같은 모습을 보면서 말이다.
내가 근무하는 회사는 산타모니카에서 5분- 10분 거리다. 높은 빌딩의 꼭대기 층을 쓰고 있어서 내 자리에서는 저 멀리 바다와 푸른 하늘, 아름다운 일몰을 반복되는 일상처럼 매일 볼 수 있다. 그렇다면 나는 언니와 동생처럼 매일매일 감동하는가? 대답은 물론 ‘아니다’다. 아니 식구들과 돌아다닌 그 어느 곳에서도 난 감동한 적이 없다. 어딜 가도 새롭지도 않았고 가슴 터질 듯한 벅찬 감흥은 기대조차 하지 않았다.
도대체 나의 정서 체계가 어떻게 된 게 아닐까? 아예 멈춰버린 건 아닌지 하는 생각이 불현듯 들었다. 비단 눈에 보이는 풍광에만 국한된 게 아니란 사실을 깨닫고 슬그머니 겁이 날 지경이다. 무얼 먹어도, 어떤 일을 해도, 어디를 가도, 무엇을 사도 무덤덤하다. 물먹은 스펀지처럼 손가락으로 아무리 찔러도 다시 튀어나올 생각도, 그럴 여력도 없어 보인다. 세상 다 산 사람처럼 멀거니 앉아 있는 내 모습에 나도 모르게 익숙해져 가는 것 같다.
10년 전 호주 멜버른의 ‘그레이트 오션 로드’를 여행하면서 그 아름다운 절경과 자연의 위대함에, 그리고 그 순간의 자유와 바닷가의 민박집에서의 소박한 식사만으로도 난 충분히 감동했고, 그리고 감사했다. 지금도 그날의 화려했던 저녁노을과 깜깜한 밤바다에서 불어오던 바람, 그리고 그 민박집의 나무 냄새까지도 생생히 떠올릴 수 있을 정도로 내겐 큰 감동이었다.
10년 전과 지금. 달라진 거라곤 그 이후 몇몇의 다른 나라들을 더 여행했다는 것과, 캘리포니아 퍼시픽코스트 하이웨이 1번 도로를 따라 펼쳐지는 해변이 호주의 그레이트 오션로드보다 덜하지 않다는 것을 알았고, 언제든지 원하면 산타모니카 비치로 달려갈 수 있는 곳에 머문다는 것 정도.
더 새롭고 멋진 곳이 많음에도 그 때만큼 감동하지 못하는 건 결국 ‘어디’나 ‘무엇’의 문제가 아니기 때문일 것이다. 객체를 바라보는 나의 태도나 자세에 달린 문제일뿐. 얼마나 온전히 그 순간에 나를 내던질 것인가. 얼마나 ‘그것’을 진심으로 바라보고 감상하는가.
한가로운 주말에 친한 친구들과 함께 하는 브런치, 계획 없이 나선 가벼운 쇼핑, 집 앞 카페에서의 커피 한 잔, 무심코 다시 펼친 오래된 책에서 발견한 연필로 그어 놓은 감동받았던 글귀들, 옛 친구에게서 받은 반가운 메일. 늦잠자고 일어난 한가한 토요일 오후의 나른함. 햇빛 가득한 거실에 누워 바라본 푸른 하늘.
습관처럼 무덤덤해진 일상을 이러한 소소한 감동들로 채워나가다 보면, 우리의 일상은 더 이상 ‘일상’이 아닌 감동의 연속이 될 것이다. 굳이 더 새롭고 더 자극적인 무언가, 또는 어딘가를 찾아 헤맬 필요가 없어질 것이며, 지금 머문 자리에 감사할 줄 아는 정서적으로 풍부한, 조금 더 성숙한 나를 발견하게 될 것이다.
김진아/ 캠벨 이웰드 시장분석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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