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술대학을 같이 다니던 친구들 중 화가의 길이 아닌 다른 길을 가는 친구가 있다. 10여 년 전 다운타운의 스튜디오를 김지원이 다녀가고 나면 하얀 아카시아 꽃이 피었다가 가는 듯한 느낌을 받아서 “영혼의 향기가 저렇게 선명히 느껴지는 사람이 있구나”하고 혼자 감탄하곤 했다.
그녀는 극단 1981에서 함께 연극을 했는데 고혹적이고 비감에 찬 매력이 있는 화가였다. 한 몇 년 보지 못했다가 다시 만났을 때 인상이 너무나 달라져 있었다. 어둠 속에 빛나는 꽃처럼 강렬하고 차갑고 날카롭던 모습은 간데없고 온유하고 맑은 모습이 놀라워서 사람의 모습이 이렇게 180도 달라질 수도 있구나 싶었다.
무엇이든지 직접 겪지 않으면 믿지 못하는 나는 친구의 모습이 왜 그리 달라졌는지 궁금했고 그 애의 조용히 빛나는 내면의 아름다움으로 인해 그의 말을 믿을 준비가 되어 있었다.
그는 명상을 시작한지 몇 년 되었다고 했는데 ‘해탈’이 이제 자신의 삶의 목표라고 했다.
중학교 때 교과서에서 읽은 것 같은 ‘해탈’‘무아’‘진아’라는 말을 들으며 마치 새벽이 깨어나는 듯한 느낌이었고 아, 이런 ‘말’을 하는 사람이 내 곁에 왔구나… 했다. 그녀는 명상하러 다니며 지금의 남편을 만났는데 스스럼없이 “우리 부부의 인생의 목표는 ‘해탈’이야” 라고 말했다.
그녀와의 오랜 우정은 그녀의 영혼의 도정을 바라보며 대화하는 길이기도 했다. 그림을 그린다는 것은 자신의 의식 상태를 그리는 것이기에 인간과 영혼의 문제에 관심을 기울이는 나에게 그녀의 온유하고 밝은 미소와 깨끗한 눈빛은 큰 깨달음을 주었다.
이 세상에서 여러 가지로 남을 도울 수 있지만 맑고 깨어난 모습, 영혼의 아름다움으로 빛나는 모습을 보여주는 이들이 무척 소중하다.
그녀는 아름다운 기도문들을 보여주며 한인타운의 청소년들이 많이 오는 곳에 같이 붙이러 다니자고도 했고 안아주는 성녀(Hugging Saint)라는 인도의 암마(AMMA)에게 데려가기도 했다. “이 시대엔 더욱 더 신의 은총이 많이 쏟아져 내리고 있어”라고 말하며 내게 채식하는 법도 가르쳐주고 결국은 장애아들을 만져치료하는 치유자의 길을 가고 있다.
스스로 깨치면 됐지 왜 그렇게 성자들 얘기를 좋아하느냐는 친구의 질문에 “나로선 일종의 즐거운 유희가 아닌가 싶어” 라고 대답하기도 하는데 그녀는 내게 라마나 마하리쉬<사진>의 책을 가져다주기도 했다. 모든 것이 인연 따라 오는 것이지만 성자들의 가르침도 인연 따라 오는데 나에겐 여러 명의 친구가 동시에 라마나 마하리쉬를 전해주었다.
더구나 이제는 고인이 된 절친했던 연인의 환한 웃음을 닮아 내가 가까이 느끼기도 하는 라마나 마하리쉬의 아름다운 모습은 가만히 들여다보고만 있어도 영혼이 치유된다고 하는데 내가 즐겨 읽는 많은 성자들의 책 중에서도 가장 뛰어난 지혜의 말들이 그의 책 속에 있다. 원체 빛나는 지혜들이라 그의 책을 자꾸 읽으면 가슴이 열리고 머리가 환해진다.
그는 실재란 비어있음(空)과 지복, 그리고 모든 것이 하나라고 하는데 특히 침묵의 은총으로 수많은 제자들에게 지복을 안겨 준다고 한다. 요즘처럼 근심과 공포가 뒤흔드는 위기의 시대에 마음의 평화는 네 자신 속에 있다는 그의 가르침을 읽으며 고요함과 명료함으로 어려운 고비를 통찰해 나가는 지혜를 얻고 있다.
어젯밤엔 안개가 자욱이 끼었고 서늘한 공기가 청명했다. 곧 겨울비가 내릴텐데… 난 대지에 내리는 정화의 축복을 기다리듯 겨울비를 기다린다. 어려운 시대는 놀랍게도 더욱 더 깊은 가슴과 가슴이 서로의 존재의 사랑을 확인하는 시대이기도 하다. 모두들 불안을 얘기하는 수상한 이 시대에 중요한 것은 우리들이 한 시대를 ‘함께’ 살았다는 것일 것이다.
박혜숙
화 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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