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 그림은 바다가 보이는 창이 넓은 송도의 카페 벽에 붙여져 있었다. 분명 그 그림을 그린 화가가 마음속 깊이 꿈꾸는 소녀의 초상일 것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하늘빛과 청빛의 배경으로 밝고 스산한 눈빛의 소녀는 가난과 욕망을 의미하는 듯한 세개의 포켓이 있는 윗도리를 입고 있고 자동차인 듯 착각을 일으키는 별들이 하늘에 보인다. 12인치 x 9인치의 소품인데 소녀의 맑은 눈빛이 선뜻 눈에 들어와 찬다.
그 그림을 그린 화가는 프랑스에서 극심한 가난 속에 유학하고 한국에 돌아와 유랑하며 그림을 그렸던 손기철이다. 그는 인천의 탄트라 카페의 지하창고에서 가끔 기거하며 그림을 그렸는데 3년전 간암으로 죽었다. 화가로서는 좋은 작품을 시작할 나이인 52세였다.
때로 무명의 화가에게서 더욱 신선하고 진정한 그림을 발견한다.
나는 10년 전 한국 동숭동의 카페에서 우연히 친구와 함께 그를 만났다.
밤에 카페에 앉아 그가 들고 있던 스케치북을 들여다 볼 기회가 있었다.
스케치북 첫 페이지에 김기림의 ‘바다와 나비’라는 시가 적혀있었다.
<아무도 그에게 수심(水深)을 일러 준 일이 없기에
흰나비는 도무지 바다가 무섭지 않다.
청(靑)무우밭인가 해서 내려갔다가는
어린 날개가 물결에 절어서
공주처럼 지쳐서 돌아온다.
삼월(三月)달 바다가 꽃이 피지 않아서 서글픈
나비 허리에 새파란 초생달이 시리다>
여러 톤의 짙은 청빛의 민감한 구도 속에 그려져 있는 하얀 토끼를 보며 무척 아름다운 그림이라고 하니까 카펫처럼 직조해서 작업할거라고 말하던 생각이 난다.
스케치북 가득히 그려져 있는 그림들과 그림의 구상 스케치를 보며 “천재구나!”하며 내심 기뻤던 기억이 난다. 단 한번의 개인전도 갖지 못한 채 화가는 죽었다.
9월에 들어서니 지난여름 올림픽의 기억이 아스라하다. 중국 문명의 미래를 표방하는 장예모 감독의 개막식은 중국문화의 아름다움 보다는 물량적 제국주의의 내음이 물씬 풍기는, 타락과 야만의 정신이 느껴져서 섬뜩했다.
인간이 중시되지 않는 문명을 도발적으로 전시하는 중국인들의 촌스러운 비유적 발상과 6.25때 중공군의 인해전술을 기억나게 하는 야만적 인간경시의 화려한 퍼레이드를 바라보며 세계인들이 동양의 신비와 아름다움을 느낄 수 있었을까 의심스러웠다.
언젠가 통일이 되어 우리에게 올림픽 개막식 창조의 기회가 주어진다면 어떤 신명의 정신이 진정한 한국의 세계적 아름다움일까를 상상했다.
친구는 유튜브를 열어 B 보이의 판문점의 춤을 보여주었다. 경직된 남과 북의 경비병들이 서서히 힙합의 춤으로 하나 되는 멋진 뮤직 비디오였다.
우리 아이들이 대견하게 느껴졌다. 중국, 미국, 일본의 국제정세 속에서 민족주의의 대안은 무엇일까라고 친구는 물었다.
나는 차라리 ‘바다와 나비’의 수심의 깊이를 생각했다. 삶의 광야를 지나 말없이 사라져간, 극히 현대적인 한 소녀의 초상화를 그리고 죽은 화가는 죽음의 심연을 넘어 시(詩)처럼 나에게 온다.
미국의 만화 같은 릭텐슈타인의 그림을 700만 달러에 사들이고 2류 조각가 올덴버그를 100만달러에 사들여 청계천에 세우는 한국인의 문화적 사대주의 앞에 한 뼘이 겨우 넘는 소중한 한 장의 초상화는 깊은 수심(水深)으로 두려움 없이 날아간 친구화가의 청무우밭 같이 푸르른 꿈이 다시 깨어나게 한다.
박혜숙 화 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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