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도자 한사람은 종종 그가 이끄는 조직이나 국가 전체를 의미한다. 이런 사례들은 기업들 가운데 특히 많다. 대표적 기업이 애플이다. 몇 달 전 애플 창업자 스티브 잡스의 건강이상설이 퍼지면서 애플의 주가가 폭락하는 사태가 일어났다.
잡스는 몇년 전 췌장암 진단을 받고 수술을 받은 바 있는데 지난 6월 한 강연장에 마르고 초췌한 모습으로 나타나자 건강이상설이 퍼진 것이다. 잡스의 열성 팬인 잭 웰치 전 GE회장은 이렇게 말한다. “잡스는 곧 회사다. 그는 애플을 상징한다.” 그렇기 때문에 잡스의 건강은 개인적 문제이면서 동시에 공적인 문제라는 것이다. 투자의 귀재 워런 버핏이 이끄는 버크셔 헤서웨이 투자가들도 버핏의 건강에 촉각을 곤두세운다. 그의 건강이 곧 주가의 건강을 의미하기 때문이다.
국가 수반, 특히 전체주의 국가 지도자의 건강은 그 국가 체제뿐 아니라 국제적으로도 대단히 중요한 의미와 영향을 지닌다. 2년 전 쿠바 지도자 피델 카스트로가 입원했을 때 국제사회, 특히 미국은 그의 병세에 촉각을 곤두세웠다.
미국의 관심과 시선을 의식한 듯 카스트로는 병석에서 “쿠바에 대한 미국의 위협 때문에 나의 병세는 국가기밀로 다뤄져야한다”면서 정확한 병세를 밝히지 못하는데 대해 쿠바 국민들에 용서를 구하기도 했다.
지구상에서 가장 폐쇄적인 국가인 북한 지도자 김정일의 건강에 이상이 생긴 듯하다. 건강 이상설이 확산되자 북한 당국은 ‘음모론’을 내세우며 이를 강하게 부인하고 있다. 하지만 이런저런 정황을 종합해 볼 때 김정일의 건강에 문제가 생긴 것만은 분명해 보인다. 정확한 병세는 확인되지 않고 있지만 일단은 순환기 계통 질환으로 쓰러졌다가 현재 회복세에 있는 것으로 추측된다. 생명이 위험할 정도는 아닌 것 같다.
김정일은 유전적으로 건강 체질이라 보기 힘들다. 아버지인 김일성처럼 심장계통의 문제와 당뇨를 지니고 있다. 김일성은 장수연구소까지 만들며 오래 살려고 발버둥 쳤지만 겨우 80을 넘겼을 뿐이다.
김정일이 한달 이상 공개 활동을 하지 않은 채 모습을 감춰온 것은 자주 있어 온 일이다. 그때마다 신변 이상설이 쏟아져 나왔지만 사실이 아닌 것으로 드러나곤 했다. 하지만 이번에는 달라 보인다.
전체주의 국가 지도층 내부의 동향을 파악하는 데는 스파이 등을 이용한 ‘휴민트’(Humint), 즉 ‘휴먼 인텔리전스’가 절대적으로 중요하다. 그동안 한국은 북한 내부의 ‘휴민트’에 있어서는 미국보다 우월하다고 강조해왔는데 이번 김정일 중병설 확인과정에서 북한 내부의 휴민트가 상당히 붕괴된 것으로 드러났다.
김정일의 건강을 둘러 싼 설왕설래와 온갖 추측은 북한이 얼마나 불투명한 사회인지를 그대로 보여준다. 카스트로는 그래도 병세를 밝히지 못하는데 대해 국민들에게 사과했는데 북한 지도부는 침묵으로 일관하고 있다.
가부장적 문화가 지배하는 북한에서 김정일은 곧 국가 그 자체이다. 그의 건강 악화와 유고 가능성은 남북관계에 절대적인 영향을 미칠 수밖에 없다. 이런 북한을 상대하는 데는 대단히 정교한 첩보망과 분석력이 요구된다. 그런데 이번 김정일의 건강이상설에 대응하는 모습은 그다지 미더워 보이지 않는다. 갖가지 설에 휘둘리지 말고 좀 더 차분히 대응해 주었으면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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