LA 고등학교에서 졸업을 앞둔 한인 학생 9명이 명문대학에 합격하고도 체류신분 문제로 등록금을 마련하지 못해 진학을 포기해야 하는 상황이라며 언론에 도움을 청해 왔다.
취재를 위해 학교를 찾았는데 담당자로부터 돌발상황이 발생했다는 얘기를 들었다. 유학생 신분인 여학생 1명을 제외한 나머지 학생들의 부모들이 학생들의 서류미비자 신분이 드러나는 것을 염려해 신분을 밝히는데 동의하지 않아 학생들의 이름을 공개할 수 없고 사진도 찍을 수 없다는 것이었다. 진부한 표현이지만 꿈을 펼쳐야 할 나이의 학생들이 도움을 청하는 것조차 두려워하면서 서류미비자라는 현실의 굴레를 짊어져야 하는 모습이 측은하다고 느꼈다.
미국 내 대학 등록금이 천정부지로 치솟고 있다. 주립대 학비가 연 2만달러를 훌쩍 넘고 사립대의 경우 4만달러를 초과하는 학교도 많다. 하지만 부모의 소득이 적을 경우에는 각종 학비보조(그랜트) 혜택을 받아 등록금의 50% 이상을 충당할 수 있고 저금리로 학생 융자도 받을 수 있다. 실제로 미 대학생의 70% 이상이 어떤 형태로든 정부의 지원을 받는다. 장학금을 받아 사립대학을 거의 무료로 다니는 기특한 학생들도 많다. 이처럼 가정형편이 어려워도 마음만 먹으면 학비보조 혜택을 받으며 대학교육을 받을 수 있으니 미국에서는 교육이 ‘성공의 사다리’ 역할을 한다.
하지만 서류미비 학생들에게 학비보조 프로그램은 ‘그림의 떡’이다. 미국 공교육의 모든 혜택은 시민권자와 영주권자에게 우선적으로 제공되기 때문이다. 그래서 서류미비자들에게는 ‘성공의 사다리’를 탈 기회가 쉽게 오지 않는다.
동료 기자들과 서류미비자라는 체류신분이 올가미처럼 부모에서 자식에게 세습되는 것은 부당하다는 이야기를 나눴다. 부모가 자녀들을 미국에 데려올 작정을 했다면 체류신분은 당연히 해결돼야 하고 학비 정도는 미리 마련해 두었어야 하지 않았느냐는 비판의 목소리로 나왔다.
한 미국인 친구는 부모가 왜 자녀의 학비를 대야 하냐고 반문하기도 했다. 18세가 넘었으면 인생을 독립적으로 개척해야 한다는 주장이다. 전 세계에서 부모가 자녀의 학비를 대는 나라는 한국과 일본 외에 극히 드문 것도 사실이다. LA고교 서류미비자 학생들의 딱한 상황을 취재하면서 ‘교육은 과연 누구의 책임인가’라는 더 큰 의문이 들었다.
부모들이 ‘우골탑’을 세워가면서 책임져야 하는지, ‘개천에서 용 난다’는 말이 있듯 학생 개개인이 자신의 앞길을 독립적으로 개척해야 하는지, 교육은 ‘백년대계’인 만큼 국가에서 책임져야 하는지 쉽게 결론을 내릴 수가 없다.
미국의 교육 환경이 점점 나빠지고 있다. 대학 문은 좁아지고, 교육예산은 삭감되고, 등록금은 치솟고 있다. 부모를 따라 미국에 왔다가 서류미비자가 된 학생들이 헤쳐 나가기에는 험난한 환경이다. 다행히 대학진학을 포기해야 할 상황에 처한 LA고교 학생들을 돕겠다는 한인들의 따뜻한 손길에 이어지고 있다. 이들 학생들이 현실에 좌절하지 말고 꿈을 실현할 수 있기를 기원한다.
김연신 사회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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