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두바이=연합뉴스) 강훈상 특파원 = 이란 대통령으로선 처음으로 2일 이라크 바그다드에 발을 디딘 마무드 아마디네자드 이란 대통령을 바라보는 미국의 심경이 복잡하다.
이번 방문은 형식상 잘랄 탈라바니 이라크 대통령의 초청으로 이뤄졌지만 이라크 정부의 주요 정책 판단이 사실상 미국 정부의 `보이지 않는 승인’ 하에 이뤄진다는 점에서 미국은 이처럼 의미있는 외교행사에 이미 `오케이’ 사인을 줬다고 볼 수 있다.
하지만 자신의 앞마당이나 다름없는 바그다드를 `앙숙’인 아마디네자드 대통령에게 내줘야 하는 미국 입장에선 그리 속내가 개운치만은 않을 터다.
이번 이란-이라크 정상회담을 배후 승인 했으면서도 제3자의 위치에서 어쩔 수 없이 이틀간 아마디네자드 대통령의 정치 선전을 바라봐야 하기 때문이다.
아마디네자드 대통령은 바그다드 방문 하루 전 미국을 `바그다드의 점령자’로 칭하며 특유의 직접 화법으로 군대를 16만명이나 보낸 나라가 오히려 이란을 이라크의 내정에 간섭한다고 하는 것은 우습지 않느냐고 미국의 심기를 자극했다.
예상대로 그는 2일 붉은 융단을 밟으며 바그다드에 도착, 미국 대사관의 코 앞인 이라크 대통령 집무실에서 자신의 방문이 양국 관계에 새 장을 열었다며 이라크 국민의 고통을 통감하며 이란이 이를 돕겠다고 선언했다.
미국의 복잡한 심사는 이란을 이라크의 테러조직의 배후로 지목하면서도 이라크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선 이란의 영향력을 빌려야 하는 아이러니 때문이다. 그러나 미국의 이런 `이라크 딜레마’는 미국의 중동정책을 되짚어 봤을 때 외부 환경의 탓이라기보다 자초한 면이 크다.
미국은 1980∼1990년대 이란의 이슬람 원리주의에 맞서고 매장량 세계 3위의 이라크 석유자원을 장악하기 위해 사담 후세인의 수니파 정권을 지원했지만 후세인이 서서히 통제권을 벗어나자 결국 2003년 자신의 손으로 이를 붕괴시키기에 이른다.
이라크전으로 시작된 `포스트 사담’ 시대에 미국 정부의 대안은 후세인 시절 반정부 활동을 했던 시아파 밖에 달리 선택이 없었고 이들은 예상대로 미국의 후원 하에 집권 세력이 됐다.
미국은 이란과 같은 시아파 집권 세력이지만 충분히 자신의 의도대로 움직일 수 있다고 간과했을 수도 있다.
하지만 이라크 문제는 미국의 희망대로 흘러가지 않았다.
이라크 시아파 집권층은 후세인 시절 긴 이란 망명생활로 이란에 개인적ㆍ정치적 빚이 컸고 국경을 맞댄 양국이 경제ㆍ종교로 얽히면서 이라크에 뻗은 이란의 뿌리는 상당히 깊었다.
설상가상으로 이라크의 무장세력이 이란의 물적ㆍ인적 지원을 받는다는 `혐의’가 짙어지면서 미국은 이라크 문제 해결에서 이란을 배제할 수 없는 상황에 직면하게 된 것이다.
적으로부터 내 집을 지키기 위해 바로 그 적을 끌어들여야 하는 게 지금 미국이 처한 상황인 셈이다.
미국의 이런 역설적이면서도 복잡한 심경은 조지 부시 미국 대통령의 발언에서도 엿보인다.
부시 대통령은 1일 이란은 이웃이지만 우리 시민(이라크인)을 죽이는 정교한 장비를 보내지 말아야 한다는 게 (이라크가 이란에 전할) 메시지라며 이번 방문으로 이란을 고립한다는 미국의 노력이 훼손되진 않을 것이라고 평가절하했다.
이에 이란 정부는 미국은 이란-이라크의 친선 관계가 강화되길 원하지 않으며 부시 대통령의 말은 양국 관계를 간섭하는 것이라고 받아쳤다.
미국은 이라크 문제를 평화적으로 해결하고 외세의 간섭을 배제한 주권 국가를 설립한다는 자신의 명분에 발목을 잡힌 셈이다.
hskang@yn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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