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도할 때 가장 행복합니다
첫 부자(父子) 유도 국가대표 출신
아직도 꿈 속에서 시합합니다.
지금은 은퇴한지 몇 년의 시간이 흘렀지만 유도에 대한 한지환(30, 사진)씨의 열정은 선수시절이나 지금이나 변함이 없다.
보통의 국가대표 선수들이 초등학교, 중학교 시절부터 운동을 시작한 것에 비해 한지환씨의 출발은 늦은 셈이었다. 중학교를 졸업하고 친구와 함께 당시 한국사회체육센터(SAKA, 강동구 둔촌동)에서 재미삼아 유도를 배운 그는 유도에 푹 빠지게 됐다.
고등학교에 진학하면서 유도를 배우겠다고 자청한 그는 학교에서 본격적으로 운동을 시작했다. 단기간내에 기량을 끌어올린 그는 3학년 마지막 시합에서 우승을 차지, 용인대 유도학과에 장학생으로 입학한다.
그의 이처럼 빠른 성장의 배경에는 본인의 피나는 노력과 유도에의 열정 뿐만 아니라 1972년 뮌헨올림픽 유도 국가대표 출신인 아버지 한성철 용인대 유도학과 교수로부터 물려받은 ‘유도 유전자’와 열정도 한몫 했을 것.
아버지에 이어 부자(父子) 유도 국가대표로 2000년 시드니 올림픽에 출전했던 한지환씨는 당시 세계랭킹 5위였다. 4위까지 주어지는 시드배정을 받지 못했던 그는 당시 세계랭킹 1위와 첫 경기에서 맞붙는다. 내가 이길 것이라고 생각했습니다라고 당시를 회상한 한씨는 그러나 그 시합에서 무릎 부상을 당하는 불운을 겪는다.
이 부상으로 그는 1년 이상 재활에만 전념해야 했다. 부상에서 복귀한 뒤에도 재기를 노렸으나 큰 부상 뒤 재발을 우려하는 심리적 위축이 발목을 잡았다.
그 후 한지환씨는 지도자의 길을 걷기 시작한다. 대만 유도국가대표팀 감독으로 2년간 선수들을 지도하면서 유도에의 열정을 발산했던 그는 UC버클리 무도연구소 유도클럽에서 일하기 위해 대만 국가대표팀 감독 계약이 끝나는대로 미국으로 건너왔다.
3개월간 잠시 유도클럽에서 자원봉사를 하던 한지환씨는 프리몬트에 있는 행도관(관장 최의정)에서 태권도 사범으로 1년 6개월간 일했다. 그는 태권도 알리기에 앞장서시는 최의정 관장님으로부터 많은 것을 배울 수 있었던 좋은 기간이었다고 말했다.
한지환씨는 3월부터 UC버클리 무도연구소 유도클럽에서 인스트럭터로 일함과 동시에 2월부터 세인트메리 칼리지(St. Mary College)에서도 태권도와 용무도 강사로 일하기 시작했다.
그는 우연한 기회에 (유도에) 발을 담그고 유도의 좋은 면을 보게 되면서 점점 유도에 대한 모든 것이 좋아지게 됐다고 ‘무한 유도사랑’을 표현했다.
한편 23일(토) 블랙 벨트 테스트를 가진 행도관에서는 떠나는 한지환 사범을 위해 송별연을 열었다. 이날 송별연 이전 블랙 벨트 테스트에서는 부모님 앞에서 큰절하기, 한글로 자기 이름 쓰기, 국기에 대한 경례 등 태권도를 통한 한국 문화 알리기 행사가 있었다.
<박승범 기자> sbpark@koreatime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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