LA살면서 늘 감사하는 것은 이곳이 ‘한국 음식의 천국’이라는 사실을 발견할 때다. 어제 동해안에서 잡힌 싱싱한 전어가 오늘 타운내 매장에서 판매되는가 하면, 양념치킨, 고구마 피자 등 한국에서 ‘히트’ 쳤다는 모든 종류의 요리가 고스란히 건너온다. 굳이 비행기 타고 한국까지 날아가지 않아도 앉은 자리에서 각양각색의 한국 음식을 맛 볼 수 있으니 타주에 사는 한인들이 바라보았을 때 그야말로 지상낙원이다.
이 같은 지상낙원 속에서도 뼈저리게 아쉬운 사실이 있으니, 바로 아직까지 ‘길거리 식’ 떡볶이 맛을 발견하지 못했다는 사실이다. ‘길거리 식’이란 맛있고 없고의 차원이 아닌, 우리(?)가 어린 시절 다니던 초등학교 근처 육교 아래 혹은 문방구 한 구석에서 판매하던 바로 ‘그’ 떡볶이를 의미한다. 어디까지나 개인적인 의견일 뿐이니 떡볶이 집 주인들은 오해하지 말기를 바란다.
육교 밑 포장마차 떡볶이란 직사각형 모양의 철판에서 새빨간 양념을 뒤집어 쓴 떡볶이. 비닐봉지 씌운 플래스틱 접시에 담겨 한 접시에 100원(80년대 초반 이야기다)에 판매, 요즘 같은 경제 불황 시절에는 더욱더 그리운 오랜 친구 같은 음식이다. 쌀떡도 아닌, 그저 멀건 밀가루 떡에 국물도 고추장과 물엿에 파 몇 조각, 오뎅 몇 조각 넣고 끓이는 것이 다였는데 왜 그리도 맛있었는지 모르겠다.
그렇다면 문명이 발달해도 너무 발달해 인간의 사고방식을 뛰어넘을 만큼 저만치 앞서 가버린 요즘, 이 ‘그윽한’ 맛의 재현이 이곳에서 불가능한 이유는 무엇일까. 결론부터 말하자면 “까다로운 식품 위생법에 의거해서는 그 맛을 낼 수 없다”는 것이다. 옛날 떡볶이의 오묘한 맛의 비결은 바로 철판에 묻어있는 양념(찌꺼기)에서 비롯된다. 오랜 세월 떡볶이를 끓여온 그 철판에는 온갖 고추장과 물엿, 오뎅의 맛이 세월의 흔적처럼 꾹꾹 쌓여있다. 여기에 오뎅 국물을 붓고 떡과 재료를 넣은 뒤 하루 종일 우려(?)낼 때 비로소 와인이 오크 통에서 숙성되듯 깊고 그윽한 숙성된 떡볶이의 맛이 완성되는 것이다. 이 떡볶이에는 오랜 세월 재료들이 쌓이고 쌓인 데서 흘러나오는, 말로 형언하기에는 부족한 깊은 맛이 담겨있으니, 깨끗이 닦은 새 그릇에 길어야 30분 볶아 만들어내는 떡볶이 맛과는 차원이 다를 것이다.
그 깊은 맛을 제대로 만끽할 수 없다는 사실이 안타깝지만 위생적으로 건강하게 먹고 사는 것이 중요하니 아쉬움을 삼킬 수밖에 없겠다. 그러나 뜻이 있는 곳에 길이 있다고 남들보다 두 세배의 정성과 열정이 있다면 떡볶이 국물과 오뎅 국물을 양껏 만든 뒤 상하지 않도록 냉장고(혹은 냉동실)에 보관하면서 며칠에 걸쳐 꺼내 두고두고 끓이면서 재탕해 먹으면 비슷한 맛을 재현할 수 있다.
그러나 바쁜 이민생활에 시도하기 만만한 일은 아닐 것이니 정말 시간이 많은 사람이 아니라면 무리하기 보다는 아쉬운 대로 위생법적(?)인 떡볶이 맛에 길을 들일 것을 권하고 싶다. 무언가 획기적인 유통기술이 개발 되 한국의 포장마차 떡볶이와 오뎅 등을 바로 당일 미국에서 주문해 먹을 수 있게 될 ‘그 날’이 올 것을 기대하며 ‘떡볶이 아쉬움’을 달래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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