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장 30여년의 세월이 흐른 2007년 1월23일, 서울 서초동 서울 중앙지법 311호 법정에서 그간 어둠에 갇혔던 ‘인혁당 사건’의 만행이 마침내 빛을 보게 되었다. 이날 인혁당 사건의 피해자 가족들은 그 당시 이 사건을 해외로 알리려다 추방당했던 제임스 시노트 신부, 원심 당시 피고인들을 변호하다 구속됐던 강신옥 변호사, 문정현, 함세웅 신부 앞에서 그간 참고 참았던 통곡을 터트렸다고 한다.
“지난 32년은 쌀알을 모래알처럼 씹으면서 참고 살아온 넋 나간 죽어지낸 삶이었습니다...”
긴급조치가 발동된 유신체제의 70년대는 북괴공작이란 말만 입에 담아도 누가 잡아 갈까봐 주위를 두리번거리며 목을 움츠렸던 공포의 분위기였다. 그런 상황에서 어느날 갑자기 전국 일간지에 대문짝만하게 ‘북괴 공작에 의한 국가전복 음모사건’의 전말과 함께 상당수의 사진이 실렸다. 아무것도 모른 국민 대다수는 신문기사와 관련 인물의 사진만 보고 마치 왕조시대 역모에 가담한 대역죄인 대하듯 두려움과 함께 질타를 서슴지 않았다.
그러나 30여년이 지나고 보니, 그 당시 죽어 마땅할 처벌의 대상인 그들이 저녁밥 먹고 동네 목욕탕 간다고 나섰다가 붙들려가서, 무자비한 고문을 통해 국가전복이라는 어마어마한 누명을 쓰고 억울하게 형장의 이슬로 사라진 선량한 시민들이었다니 천인공노할 만행이다.
단지 그들은 권력연장을 위해 유신헌법을 만들어낸 유신독재집단이 국민들의 비판이 두려워 긴급조치를 발동하여 국민들의 입을 봉하기 위한 하나의 본보기 ‘조작극’의 희생자들이었다.
사건은 1974년 하재완 씨 등이 북한의 사주를 받아 인민혁명당을 재건한 뒤 민청학련 등 학생 운동권을 배후에서 조종했다는 중앙정보부의 발표로부터 시작됐다. 그 후 비상 보통 군법회의가 열리고, 사형이 선고되는 순간에도 가족들은 제대로 울지도 못했다. 살아도 살아있는 생명이 아니었다.
그리고 형이 선고된지 18시간만인 75년 4월9일 전격적으로 사형이 집행됐다. 사형 당한 피고인들이 영장 없이 체포된 데다, 중앙정보부의 고문에 의해 받아낸 허위자백을 근거로 선고된 사형선고를 재심의 기회도 주지 않고 전격 처리해 버린데 대해 제네바 국제법학자협회조차 이날을 ‘사법사상 암흑의 날’로 선포했었다.
다행히 이번 ‘무죄’로 판명 난 인혁당 국가전복음모사건의 재심결과로 우리 현대사에서 또 하나 어두운 그늘을 걷어내는 역사적 성과는 이루어냈다. 사형 당한 8명의 유족이 청구한 재심에서 법원이 전원무죄를 선고함으로써 당시의 수사재판이 총체적으로 잘못됐음을 인정했다. 강압적인 심문조서, 허위자백서 등 모든 수사관련 서류의 증거 능력이 상실됨으로서 북한의 지령을 받아 공산혁명으로 국가전복을 꾀했다는 어마어마한 혐의사실 자체가 전부 조작된 허구로 판명난 것이다.
그러나 세월이 흘러 이젠 백발의 노인이 되어버린 이들 유가족은 형장의 이슬로 사라진 희생자들을 대신해 무죄선고를 받아내는 데는 성공했지만 “슬픔과 인내로 버텼던 지난 30여년을 ‘사필귀정’ 한마디로 정리하기에는 너무나 서럽다”며 통곡했다. 무죄로 판명된 그들이 다시 살아올 리 만무한 때문이다.
경제건설을 이룩하기 위해 일시적 독재나 인혁당 사건 같은 억울한 일은 어쩔 수 없었던 부작용이었다는 말은 결코 용납될 수 없다. 우리가 그간 숨 가쁘게 달려온 산업화와 민주화의 여정은 결국 모두가 인간답게 행복하게 살 권리를 확보하기 위한 것이었다.
‘진실은 반드시 밝혀진다’는 역사의 가르침 앞에서 다시한번 희망과 용기를 지닐 수 있게 됨을 감사한다.
<김재동> 한미 인권연구소 LA 이사장
댓글 안에 당신의 성숙함도 담아 주세요.
'오늘의 한마디'는 기사에 대하여 자신의 생각을 말하고 남의 생각을 들으며 서로 다양한 의견을 나누는 공간입니다. 그러나 간혹 불건전한 내용을 올리시는 분들이 계셔서 건전한 인터넷문화 정착을 위해 아래와 같은 운영원칙을 적용합니다.
자체 모니터링을 통해 아래에 해당하는 내용이 포함된 댓글이 발견되면 예고없이 삭제 조치를 하겠습니다.
불건전한 댓글을 올리거나, 이름에 비속어 및 상대방의 불쾌감을 주는 단어를 사용, 유명인 또는 특정 일반인을 사칭하는 경우 이용에 대한 차단 제재를 받을 수 있습니다. 차단될 경우, 일주일간 댓글을 달수 없게 됩니다.
명예훼손, 개인정보 유출, 욕설 등 법률에 위반되는 댓글은 관계 법령에 의거 민형사상 처벌을 받을 수 있으니 이용에 주의를 부탁드립니다.
Close
x