폴 로젠블라트는 20여 년 전 시골 생활을 연구할 때 12세 된 그의 아들을 데리고 미 중서부 농가를 인터뷰했다. 아버지와 아들은 농가에서 침대를 공유해야 했다. 인터뷰를 하러 갔으니 농부들의 눈치를 봐야했고 침대를 하나 더 달라고 요구할 형편이 아니었다. 미네소타대학 사회학과 교수인 로젠블라트 박사는 “곤욕스러웠다”고 회상했다. 아들이 침대에서 수시로 뒤척였고 발을 아버지의 얼굴 위에 올려놓았다. 로젠블라트 박사는 그야말로 엉망진창의 상태에서 겨우 밤을 보냈다.
미국인 61%는 “파트너와 침대 같이 쓴다”
혼자 자는 게 편하다는 것 인정하지만 “그래도 공유”
친밀감·푸근함·대화·둘만의 프라이버시 유지 ‘삶의 질’
자다가 발작·뇌졸중·심장마비 바로 옆에서 대처 생명 구해
로젠블라트는 다음 날 해가 밝았지만 도대체 잠을 제대로 자지 못해 몹시 피곤했다. 아들이긴 하지만 어쨌든 누군가와 같은 침대를 쓴다는 것이 얼마나 불편한 것인지 새삼 느꼈다. 최근 로젠블라트 박사는 새로운 주제로 연구를 했다. 연구주제는 슬픔이었다.
자녀가 어릴 적 사망한 부부를 인터뷰했다. 로젠블라트 박사는 “그들은 밤에 같은 침대에 누워 밤늦게까지 서로를 위로하는 대화를 나누면서 자녀를 잃은 아픔을 달랬다고 했다”고 전했다.
로젠블라트 박사는 오래 전에 아들과 농가의 한 침대에서 같이 자면서 겪었던 경험과 자녀를 잃은 부부가 같은 침대에서 서로의 아픈 마음을 달래주는 이야기를 오버랩시켰다. 침대를 공유하는 것이 우리 삶에 어떤 의미를 갖는지 더욱 궁금해졌다.
그런데 이 주제는 하도 일상적인 것이라 연구 자료가 별로 없었다. 부부관계, 결혼 등은 연구가 많이 돼 있지만 이 주제는 학자들의 관심을 끌지 못한 것이다. 그래서 로젠블라트는 이 주제를 붙잡고 파고들었다. 마침내 지난 여름 연구 결과를 책으로 출간했다. 제목은 ‘Two in a Bed: The Social System of Couple Bed Sharing’이다. 침대를 공유하는 부부의 삶에 대한 사회적 연구이다.
이 책은 침대를 함께 쓰는 부부에 대한 안내서가 아니다. 침대를 공유하면서 생기는 우스꽝 스런 이야기가 수두룩하게 게재돼 있다. 웅크리고 자기, 이불 빼앗기, 코골기 등 다양한 모습이 소개됐다. 로젠블라트 박사는 “이 이슈는 더 이상 개별적인 현상이 아니므로 보다 체계적인 연구를 필요로 한다. 새로운 연구에 불씨가 되기 위해서 이 책을 썼다”고 설명했다.
코골고·이빨 갈고·발로 차고·이불 빼앗고… 심하면 파경까지
침대에서 먹고 TV보기·화장실 드나들기·개 들여오기 등 갈등요인
전국수면재단에 따르면 미국인의 61%가 침대를 공유한다. 침대를 같이 쓰면 수면장애 가능성이 커짐에도 불구하고, 전국수면재단 설문조사 응답자의 62%가 파트너와 침대를 함께 쓰는 것을 선호한다고 말한 것으로 나타났다.
로젠블라트 박사는 “사람들은 혼자 자면 훨씬 편안하다는 것을 알면서도 침대를 공유한다. 왜 그러느냐고 물어보면 사람들은 질문 자체를 이상하게 여긴다. 마치 ‘왜 숨을 쉬느냐’는 질문을 받은 것과 같은 반응을 보인다”고 했다.
로젠블라트 박사는 42쌍을 인터뷰했다. 부부가 대부분이고, 동거 커플, 동성애 커플도 포함됐다. 이들이 침대를 같이 쓰는 이유로 든 것 가운데 가장 큰 이유는 친밀감과 편안함이다. 잠을 조금 뒤척이더라도 같이 자면 한결 마음이 편안해지고 푸근해진다는 것이었다.
성관계 때문이라는 의견은 소수에 불과했다. 하루 종일 다른 환경에서 지내다 밤에 둘만의 시간을 갖고 함께 프라이버시를 유지할 수 있는 공간이 바로 침대다. 서로의 마음을 열고 서로를 연결시켜 주는 장소이기도 하다는 게 로젠블라트 박사의 설명이다.
과거 결혼생활에서 배우자와 같은 침대를 쓰는 데 실패해 결국 파경에 이르렀다는 진술도 나왔다. 또 침대공유는 생명을 구하기도 한다. 배우자와 함께 자지 않았다면 벌써 죽었을 것이라고 말한 사람들이 의외로 많은 점에 로젠블라트 박사 자신도 놀랐다고 했다. 발작, 뇌졸중, 심장마비, 당뇨 충격 등 치명적인 증세를 발견한 것도 침대 옆에 있던 배우자다.
하지만 침대공유는 적지 않은 갈등의 원인을 제공하기도 한다. 침실 온도, 침대 위치, 침대꾸미기 등 사사건건 이견이 노출된다. 침대에서 TV를 보거나 책을 읽거나, 무엇인가 먹을 때도 여전히 논쟁이 발생할 수 있다. 벌거벗고 자는 버릇도 종종 입씨름을 낳는다. 자명종 시계를 맞추어 놓고 자는 것도 간단치 않을 수가 있다. 개나 고양이를 침실에 들여놓는 것도 이슈가 된다.
병에 걸리거나, 부상을 입거나, 코를 골거나, 전립선비대증으로 자다가 화장실을 자주 가거나, 불면증세를 보이는 것도 침대공유자에게 적지 않은 영향을 미친다. 낮에는 미처 생각하지 못한 많은 상황이 벌어진다. 침대공유자들 사이에 한 사람이 다른 사람에게 어떤 영향을 미치는지에 대한 연구가 절실한 이유는 여기에 있다.
<뉴욕타임스특약-박봉현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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