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아름다운 삶
▶ 양민교/의사.리치몬드, VA
리처드는 간이 침대에서 벌떡 일어났다. 막사 밖으로부터 우렁찬 한국말 구령이 들려왔기 때문이다. 바그다드 시내의 우수학교에서 선정된 중고등학생 들이 한국 교관으로부터 태권도를 배우고 있는 것이다. 그들의 흰 도복에는 태극기가 선명하게 그려져 있었다.
1년 전 머리에 입은 중상을 말끔히 회복하고, 한달 전 바그다드 주둔사령부 보안대 총책임자로 부임했다. 시내에서 빈번히 발생하는 폭탄테러는 리처드가 부임하면서부터 그의 마음을 단근질하고 있었다.
사단 간부들이 태권도를 배우는 아이들을 호기심으로 바라보고 있었다. 사단장 존슨 소장이 기쁜 표정으로 가볍게 리처드의 등을 두드리며, “리처드 중령, 자네의 생각은 옳았네. 바그다드 시민들이 자네만이 아니라 우리 미군까지 사랑하게 되겠군” 했다. 리처드는 “한국군 김 대위가 저의 제의를 쾌히 승낙해서 그에게 감사해야 합니다” 라고 대답했다.
리처드는 오늘도 사단 내의 이라크인 근무자 신상기록을 뒤적였다. 데지가 영어 반 한국말 반 섞어서 “중령님, 커피 드세요” 하고 상쾌하게 뜨거운 커피를 책상에 놓고 나갔다. 데지는 바그다드에서 태어났지만 외교관 아버지를 따라 어려서부터 외국에서 자랐다. 지금은 학교 선생과 결혼해서 중학교에 다니는 아들을 키운다. 데지는 통역과 번역을 했다. 그녀는 미모에 상냥하고 예의가 발랐다.
리처드는 머리를 식힐 겸 사무실을 나섰다. 갑자기 축구공이 날아왔다. 리처드가 재치 있게 헤딩으로 받았다. 꼬마 축구선수들이 박수를 쳤다. 싸지가 쏜살같이 달려와서 볼을 가로채 골문을 향해 찼다. 공은 멋진 곡선을 그리며 골문으로 들어갔다. 데지가 리처드 뒤에서 박수를 쳤다. 싸지는 데지에게 달려가서 안겼다.
6개월이 훌쩍 가버렸다. 한 달에 두서너 번의 큰 테러폭발이 연이어 일어났다. 리처드는 마음을 놓을 수가 없었다. 학생들의 태권도와 축구게임은 지역민의 적극적 호응으로 인기가 날로 높아갔다. 리처드는 직접 학생들의 축구를 지도했다. 싸지는 유별나게 태권도와 축구를 좋아하고 잘했다. 새해가 지나면서 테러행위는 기승을 더해갔다.
갑자기 리처드의 비퍼가 울렸다. 문자에 ‘테러1급비상’이라고 써있었다. 리처드는 자동소총에 탄창을 두 개 더 묶었다. 그리고 옆방의 김 대위를 깨웠다. 둘은 잽싸게 짚에 올라 본부로 향했다. 본부 밖 바리케이드 근처서 불꽃이 오르고 큰 폭발음이 연거푸 났다. 리처드는 세게 액셀러레이터를 밟았다. 김 대위는 선 채로 기관포 포장을 벗겼다. 갈색 버스가 땅에 주저앉아있고 천장이 날아간 채 연기를 뿜고 있었다. 군과 경찰이 아수라장인 현장을 정리하고 있었다. 벤 대위가 리처드에게 상황 보고를 했다. 버스 잔해 속에서 데지가 피투성이가 된 싸지를 안고 나왔다. 리처드는 싸지를 받아서 짚 후드에 올리고 달랑 매달린 한쪽 다리를 판자에 묶어 지혈을 했다. 이 대위는 재빠르게 차를 몰아 본부 응급실로 향했다.
싸지가 깨어났다. 리처드를 보자 미소로 인사했다. 데지는 눈물을 흘리고 있었다. 싸지의 한쪽 다리는 보이지 않았다. 리차드는 싸지의 머리를 쓰다듬으면서 따뜻한 목소리로 “내 친구가 너에게 새 다리를 만들어준다고 약속을 했어. 2달 후에 엄마와 함께 미국에 초청했지”라고 말할 때 벤 대위가 급하게 병동을 걸어와서 리처드 귀에 속삭이며 보고를 했다. “도주하는 폭파범을 사살했습니다. 놀라지 마세요. 데지의 남편이 확실합니다.” 리처드는 표정을 바꾸지 않은 채 싸지의 손을 꽉 쥐었다.
양민교/의사.리치몬드, VA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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