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른 날보다 조금 일찍 운동을 끝내고 귀가하려고 서두르고 있을 때였다. “두 분, 부부 되세요?” 낯선 그 사람은 재미있게 운동을 하고 있는 우리를 지켜보고 있었던 모양이다. 나를 쳐다보며 동생이 픽 웃는다. 그 웃음 속에는 ‘내가 누나보다 나이가 더 들어 보인다 이건가, 아니면 누나가 젊어 보인다는 건가’ 하는 묘한 감정이 순간적으로 교차된 표정이 녹아 있다.
“아니에요, 내 막내 동생이에요.” “두 분이 좀 닮았다 하면서도 꼭 정다운 내외 사이처럼 보였거든요. 남매지간에 그렇게 다정스러운 모습을 보니 퍽 부럽네요.”
아직 하늘에 걸려 있는 저녁 햇살이, 조금은 추운 날씨인데도 오늘 따라 따뜻하게 느껴진다. 아마도 오랜만에 성묘에 나선, 같은 마음이 담기는 혈육의 정 때문인 것 같다. 무엇이 그렇게 바쁘게 하는 건지 지척에 살고 있으면서도 집안의 대소사에서나 만나고 그밖에는 전화나 이메일로 안부하는 게 고작이었다.
요즈음 내가 시간을 내면서부터는 동생과 같이 운동을 하게 되어 이따금씩 만난다. 같이 어울려 운동을 하다 보니 남들의 눈에는 흉허물 없이 지내는 모습으로 띄어서인지 아는 사람들은 부러운 시선을 던지곤 한다.
밤늦은 시각에 전화벨이 요란히 울린다. 동생이다. 자리가 생겨서 비행기를 탈 수 있게 되어, 급히 떠나오느라 말을 전하지 못하고 공항에 나와서 전화한단다. 좀 있다가 귀국할 테니까 그 동안 배워준 대로 열심히 연습해 두라고 한다. 아직도 운동에는 왕초보인 누나인데 가르쳐 주던 것을 중지하고 떠나게 되어서 그 점 미안하게 생각한다고 한 마디 더 덧붙인다. 또 한 번 가슴이 싸하다.
걱정해 주고 배려해 주는 그 따뜻한 마음은 같은 핏줄로 태어난 형제이기에 가능한 일일 것이 다. 동생도 나의 단점을 잘 알고 나도 동생의 단점을 훤히 들여다보지만 우리는 그것들을 서로 이해의 차원에서 수용하고 잘잘못을 따지기 전에 먼저 보듬어 주는 혈연의 정으로 관계를 맺는다. 때문에 형제간에는 피해의 대상이 되거나 역습의 요지가 제공되는 일은 일어나지 않는다. 혈연, 세상 모든 사물의 이치나 인륜이 그런 고리로 이어진다면 삶의 밭은 푸른 초원처럼 잔잔하고 싱싱하며 아름다울 것이다. 그런데 예쁘게 세상을 모자이크하는 방법은 진정 없는 것일까?
“누나는 항상 왕초보라는 것을 잊지 마. 잔뜩 움켜쥔 욕심 버리고, 잡념을 털어 버리고, 힘주지 말고, 세상 종말이 오늘 당장 오는 것이 아니니까 덤비지 말고 서서히 준비해야 하는 것 알 지, 누나?” 이쯤 되면 동생이 내 머리 꼭대기에 올라앉은 격이다. 알았으니 별탈 없이 건강하게 지내다가 돌아오기나 하라고 못 박는다. 목젖이 간질간질한 것을 참고 꿀꺽 넘긴다. 그래야 누나가 몇 수 앞을 내다볼 줄 알만큼 수가 세다는 것을 뒤에 긍정할 것이니까. 그리 오래 걸리지 않을 터인데도 주위가 빈 것 같이 허전하다. 그것이 오뉘의 정인가?
문금숙/ 아케디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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