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이 만들어 낸 피조물 가운데 가장 착하면서도 또한 가장 모진 존재가 사람이라고 한다. 그래서 귀중한 사람의 목숨을 살리는 가장 착한 사람이 있는가 하면, 그 귀한 목숨을 앗아가는 가장 모진 사람도 있다. 그렇지만 여느 사람들은 하루하루를 그냥 착하게 살아가고 있으며, 그런 가운데 모질게 살아가는 사람 때문에 언짢은 일들이 날마다 언론에 보도되고 있다.
그런데 참으로 안타까운 일은 어떤 이름난 사람이 어쩌다 모진 일을 하게 된 일이 언론에 알려지면, 느닷없이 착한(?) 사람들이 나타나서 이 사람을 나무라는 글들을 쓰는 것이다.
이 세상에 참으로 착한 사람이 있을까? 성선설을 부르짖은 맹자의 말처럼 사람의 본성은 본디 착한 것이라면 사람은 착한 존재일 것이고, 성악설을 외친 순자의 말처럼 사람은 본시 모질게 태어났다면 사람은 모진 존재일 것이다.
그러나 사람은 선악의 본성을 둘 다 지니고 태어나는 것 같다. 맹자의 말처럼 착하게 태어난 사람이 욕심 때문에 나쁜 일을 하게 되고, 순자의 생각처럼 모질게 태어난 사람이 교육이나 수양 덕에 좋은 일을 하게 되는지 모르겠다.
그러니까 착하다고 믿었던 사람이 한 일이 거짓으로 드러났다고 해서 곧바로 그 사람을 나무라는 것은 바람직한 일이 아닐 것이다. 그 좋은 보기가 황우석 팀 줄기세포 사건이다.
그들이 한일이 거짓이라고 알려지자마자 그 사건의 조사가 채 끝나기도 전에, 그 일의 전공분야와 아무 상관없는 교수를 비롯하여 심지어 목사까지 나서서 황우석 교수를 비난하는 글들을 언론에 실었을 뿐만 아니라 서울대 조사위의 최종 발표가 있기가 무섭게 기다렸다는 듯이 황교수를 사기꾼으로 몰아세우는가 하면, 검찰의 조사가 끝나기도 전에 이 사건이 다 매듭지어진 것처럼 계속해서 비난의 글들을 싣고 있다.
언론에 이 사건이 보도되는 것만으로도 가슴 아픈 데, 꼭 이런 글들을 써야만 되는 것일까? 더욱이 이 사건은 한 사람의 과학자의 일이라기보다 한국의 위상에 관련되는 중대한 일이기 때문에, 지성인이라면 모든 조사가 완전히 끝날 때까지 조용히 자중자애 해야 옳을 것이다.
나다니엘 호손의 소설 ‘주홍글씨’가 생각난다. 여주인공 헤스터 프린은 의사인 나이 많은 남편을 찾으러 보스턴에 왔으나, 인디언에게 잡혀 죽었다는 소식만 듣는다. 그런데 여기에서 젊은 목사 아더와 사랑에 빠지게 되고 아이까지 낳는다.
간통이 용서되지 않는 청교도 사회에서 아이 아버지의 이름을 밝힐 수 없는 헤스터는 감옥에 갇히게 된다. 그녀는 간통의 첫 글자 붉은 A가 새겨진 죄수복을 입는다. 그때 죽은 줄 알았던 남편이 나타나서 아더가 범인임을 알게된다. 마침내 아더는 양심의 가책으로 죄를 고백하게 되고, 그 고통 때문에 죽고 만다. 감옥을 나와 사회봉사활동을 하는 헤스터는 이제 간통의 A가 아닌 천사의 A의 상징으로 여생을 살아간다.
사람은 태어나면서 선악의 구름다리를 넘나들면서 살고 있다. 구름다리 저쪽엔 선이 있고 이쪽엔 악이 있는 것이 아니다. 저쪽에도, 이쪽에도 선과 악이 함께 있는 것이다. 그래서 이 세상엔 신 앞에서 아주 착한 사람이 하나도 없을 것 같다. 따라서 사람이란 크고 작은 차이는 있겠지만 착한 일과 모진 일을 할 수밖에 없는 존재임을 깨닫게 될 때, 나만 착한 사람이라고 잘못 생각하는 일은 없을 것 같다.
윤 아브라함
명예 목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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