크리스마스는 기독교만의 절기가 아니고 이제는 세계인의 명절이 된 것 같다. 그래서 그런지 크리스마스의 참된 의미를 상실하고 있다. 제일 먼저 크리스마스를 맞아 장식하는 곳이 유흥업소요 백화점 아닌가. 분주하고 들뜬 성탄 군중, 산적한 행사들, 성탄의 정신과는 어긋나는 엉뚱한 사고들로 성탄의 신성을 모독하는 일이 비일비재하다. 신자라는 사람들도 공연히 바쁘게 끌려 다니다보면 피곤해 지쳐버린 채 그리스도의 탄생과는 아무런 상관도 없이 어느새 크리스마스는 지나갔다고들 한다.
“오늘 다윗의 동네에서 너희에게 구주가 나셨으니 그는 곧 그리스도 주님이시다” 이것이 첫 크리스마스 날 밤에 천사가 전하여준 메시지 아니던가.
“구주가 ‘오늘’ 나셨다” 그 오늘은 영원한 오늘이다. 그 영원한 오늘이 당신의 구세주를 영접하는 ‘오늘’이 되게 하라는 것이 크리스마스의 메시지다. ‘오늘’을 ‘내일’로 미루지 말아야겠다. 현실적인 실존적 크리스마스는 ‘오늘’ 일어나야 하는 사건이다. 의미도 뜻도 모르면서 크리스마스라고 설레는 이 계절에 혼란스럽게 울려대는 캐럴의 세속화 속에서 구속사를 볼 줄 아는 눈을 가져야하는 것이다. 다른 이로서는 구원을 얻을 수 없나니 천하 인간에 구원을 얻을 만한 다른 이름을 우리에게 주신 일이 없으시다. 그래서 크리스마스가 ‘온 백성에게 미칠 큰 기쁨이 될 소식’이다.
어느 해 12월호 가이드 포스트에 이런 실화가 실린 일이 있었다.
작은 시골 교회에서 크리스마스를 맞아 연극을 하기 위해 아이들을 뽑아서 배역을 맡기는데 위리가 여관집 주인 역을 맡았다. 사실 위리는 9살로 4학년이어야 하는데 지적 능력이 다소 뒤떨어지는 소년이라 겨우 2학년이었다. 성탄절이 가까워지자 연극을 하고 싶던 위리는 대사가 없는 목동이 되어 퉁소를 들고 서 있는 것이 소원이었다. 그런데 선생님은 대사도 많고 더 중요한 여관집 주인 역을 위리에게 맡겼다.
작은 동네였지만 여러 사람이 모여들고 연극이 시작되었다. 요셉과 마리아는 황급히 등장하여 여관 문을 두드렸다. 여관집 주인인 위리가 나왔다. “무엇을 원하시오?” “머무를 방을 구합니다.” “없소. 여관은 모두 찼소. 딴 곳을 찾아보오.” 그때 요셉이 간청을 하며 “주인님, 우리는 멀리서 왔습니다. 아내가 출산할 날이 찼고 날씨도 추워 쉴 곳이 필요합니다.” 이때였다. 위리는 마리아를 오래 쳐다보았다. 말도 없이 그저 오래 쳐다보고 있다. 무대 뒤에서 대사를 읽어주던 선생님이 위리가 대사를 잊어버린 줄 알고 자꾸 읽어주었다. “안돼요, 절대 안돼요. 여기는 방이 없단 말이요.” 여관집 주인 위리의 대답을 듣고 마리아와 요셉은 “어디로 가나, 이 밤에 어디로 가야하나”하면서 슬픈 듯 뒤를 향해 걸어가고 각본대로 위리는 문안으로 들어가야 하는데 위리는 문간에 서서 걱정과 눈물로 마리아와 요셉의 가는 모습을 지켜보고 있다가 소리를 질렀다. 물론 그것은 각본에도 없는 소리였다.
“요셉, 가지 말아요. 어서 저 마리아를 데리고 들어와요.” 얼굴에 미소를 활짝 띈 위리 여관집 주인은 “내집 안방을 써요. 내 방에서 쉬란 말이에요.” 모두 놀랐다. 그런데 어느 누구도 이 연극이 망쳤다고 하는 이가 하나도 없었다. 이 장면을 지켜본 많은 관중들은 가장 뜻 깊은 크리스마스 연극을 보았다고 생각하며 돌아가지 않았을까.
박석규/은퇴 목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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