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모터사이클 일기’는 모터사이클을 타고 남미를 종단하는 두 남자의 이야기를 그린 수작이다. 이들은 아르헨티나에서 칠레와 페루를 거쳐 베네수엘라에 이르기까지 8,000km를 달리며 라틴 아메리카 주민들이 겪는 가난과 억압, 착취를 직접 체험한다. 이 경험이 이 중 한 명인 의대생 체 게바라를 혁명 투사로 만드는 계기가 된다.
게바라가 볼리비아에서 무장 투쟁을 하다 살해된 후 나중에 발견된 일기를 토대로 만들어진 이 영화는 훗날 무자비하게 ‘인민의 적’을 처단하는 마르크시스트 게바라가 한 때는 꿈 많고 이상에 불타는 가녀린 청년이었음을 보여준다.
그는 한 때 나병 수용소에서 환자들을 돌보기도 했으며 나중에 아르헨티나와 볼리비아, 과테말라에서 좌익 활동을 하다 멕시코로 피신한 후 낡은 보트를 타고 쿠바에 상륙, 카스트로와 함께 쿠바 혁명을 성공시키는데 공을 세운다. 쿠바에서 제2인자로 편히 살수도 있었지만 다시 아프리카와 라틴 아메리카에서 게릴라 활동을 하다 결국 피살된다.
그가 그 실현에 생명을 바쳤던 마르크시즘은 이제 평양과 아바나 이외에서는 찾아 볼 수 없는 역사의 유물이 돼 버렸지만 그의 인기는 여전하다. 타임지는 20세기를 움직인 영웅 20명중에 남미 출신으로 펠레를 제외하고는 유일하게 그를 선정했다.
그러나 그가 환생해 이를 본다면 과히 반가워할 것 같지는 않다. 그의 초상과 이미지가 혁명의 이상을 기리기 위해서가 아니라 T 셔츠부터 커피 잔, 기념품 판매 수단으로 이용되고 있기 때문이다. 자본주의를 증오한 그가 상품 마케팅의 아이콘으로 활용되고 있다는 것은 역사의 아이러니다.
역시 타임지에 의해 20세기 영웅의 하나로 뽑힌 로자 팍스도 그와 비슷한 길을 가는 것 같다. 미 민권 운동에 불을 지른 용기 있는 여성으로 추앙 받다 최근 작고한 그의 유산을 놓고 팍스의 친척과 말년에 그녀를 보살피던 보호자들과의 분쟁이 마침내 법정으로 갔기 때문이다.
팍스는 말년을 아파트에서 혼자 살았으며 렌트를 내지 못할 정도로생활이 어려웠던 것으로 알려졌다. 퇴거 명령을 받은 적도 있었지만 집주인이 민권 운동에 기여한 공로를 인정, 집세를 면제해 주는 바람에 겨우 홈리스 신세가 되는 것을 면할 수 있었다. 그러나 막상 그녀가 죽자 유품과 초상권 등이 값진 상품으로 떠오른 것이다.
팍스는 자식이 없지만 조카는 13명이나 되는데 이들이 팍스의 모든유산에 대한 상속권을 주장하고 나섰다. 이에 대해 그의 보호자들은 이것이 미국인 모두의 재산이라며 이를 공공의 이익을 위해 써야 한다고 맞서고 있다. 인종간의 평등과 화합을 위해 평생을 보낸 그의 유산을 놓고 친척과 보호자들이 싸우는 모습을 팍스가 본다면 뭐라 할 것인가.
“관 뚜껑에 못이 박하기 전에는 그 인간을 평하지 말라”는 말이 있지만 관 뚜껑에 못이 박힌 뒤에도 자신의 업적과 유산이 어떻게 이용될 지 알 수 없는 요즘 세상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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