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리 오래간만은 아니지만 그래도 수 년 만에 한국에 다녀왔다. 아직 봄이 다 하지 않은 서울은 상쾌한 기온에 신록이 아름다웠고 변함없이 왁자지껄 바쁘고 소란하게 오가는 사람들로 활기 차 보였다. 그런 낯익은 광경 속에서 그 전에 보지 못했던 새로운 광경은 길거리 으슥한 구석 그늘 아래 앉아 있는 노숙자들의 모습이었다.
광복 이듬해에 태어나 한국 전쟁의 처참한 파괴와 가난을 보며 자라났고 이곳 LA에서 무수한 ‘홈리스’들을 보아온 나에게 거리에서 갈 곳 없이 서성이는 부랑인이나 걸인들의 모습은 결코 낯선 모습이 아님에도 불구하고 이들 한국의 노숙자들은 예기치 못 했던 충격을 나에게 주었다. 그 이유는 그들이 앉아 있는 자태, 그들의 시선, 그들의 표정, 그 전체에서 느껴지는 것이 이제까지 내가 어떠한 한국인에게서도 보지 못했던 무관심과 포기의 몸가짐이었기 때문이다.
기억을 더듬어 아무리 옛일을 되돌아보아도, 한국의 역사를 읽어 보아도, 역사에 실리지 않고서도 오랜 세월 전승해온 소리와 춤에 묻힌 이름 없는 민중들의 감성을 들쳐보아도 내가 아는 한국인은 주어진 삶의 환경에 무관심하거나 포기하는 사람들은 아니었다.
일본 사람들처럼 독기 어린 결단 아래 모든 것을 한 승부에 걸고 그것이 실패할 경우 깨끗하게 자결하여 벚꽃처럼 지는 것을 찬양하거나 중국 사람들처럼 무위자연을 이상으로 하여 때가 오면 되리라 하는 ‘만만디’의 느긋한 자세를 갖는 것은 한국인이 취하는 삶의 자세가 아니다. 무엇을 어떻게 해야 할 것인가에 대해 서로 머리 터지는 쌈박질들을 하는 한이 있더라도 한국인들은 주어진 그들의 삶의 환경에 무관심한 일이 없었다. 현명한 선택이든 현명하지 못한 선택이든 한국인은 항상 무엇인가를 궁리하고 도모하고 그것이 실패하면 또 다른 것을 꾀해보는 것을 계속해 왔다.
세종대왕같이 고귀한 이상을 품고 한글을 창제하기 위하여 시력을 잃을 정도로 음운론을 연구하든, 당장 끼니를 채우기 위해 깡통을 들고 문전 구걸을 하거나 그것도 안 될 때는 그 집 빨래를 걷어들고 뛰는 들치기를 하든, 한국인들은 삶을 포기하는 사람들은 아니었다.
그러나 이번에 내가 본 노숙자들은 그들을 스치고 지나가는 삶에 전혀 무관심해 보였다. 서울도 이제는 국제도시라 지나가는 행인들도 별별 사람들이 다 있고 아리따운 아가씨들의 옷차림만 해도 꽤나 볼만한 구경거리이건만 그들의 눈에는 비치지도 않는 듯 했다.
오랜시간 관찰을 해본 것은 아니지만 바로 옆에 앉아 있는 동료 노숙자들과 대화를 나누는 것조차도 본 일이 없다. 구걸을 하거나 손을 벌리는 것은 더더구나 아니다. 그들은 그저… 그냥 앉아 있을 뿐이었다.
이미 그러한 단계를 넘었는지 모르지만 활기차게 돌아가는 내 나라 속에서 자기의 자리를 찾지 못하고 낙오한 데 대한 절망의 표정도 그들에게는 찾을 수 없었다. 거리의 구석으로 자기를 내어 몬 가혹한 사회에 대한 분노의 표정도 없었다. 어떠한 구제가 올 것을 기대하는 기다림이나 희망의 모습도 없었다.
물론 이들의 숫자는 나라 전체의 인구에 비해 볼 때 소수에 지나지 않을 것이다. 그러나 나에게는 그들의 존재가 한국 사회가 앓고 있는 전에 없던 심각한 병, 이제까지 수천 년간 유지해온 ‘한국인다움’을 잃도록 만드는 새로운 병의 증상으로 보인다.
김철회/법정통역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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