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고등 학생일 때 가족 이민을 오거나 조기 유학 온 학생들에게 사막의 오아시스 같은 게 있다면 바로 ‘수학’이다.
아이들이 전학만 가도 적응에 어려움을 겪기 마련인데, 말 다르고 시스템 다른 미국 학교에 동그마니 내던져지면 스트레스가 이만저만이 아니다. 교실 안에서는 영어 수업 따라 가느라 머리가 터질 지경이고, 교실 밖으로 나오면 문화 다른 토박이 미국 아이들 속에서 물위의 기름 같은 외톨이 신세를 한동안 버텨내야 한다.
이 과목을 들어도, 저 과목을 들어도 영어라는 장벽 앞에서 기가 죽는데, 그 중 유일하게 여유를 가질 수 있는 과목이 있다면 수학이다. 90년대 말, 9학년 때 이민 온 대학생의 말이다.
“수학은 말을 못 알아들어도 대충 눈치로 할 수가 있기도 하지만, 그 보다도 여기 수학이 쉽더군요. 한국에서 다 배운 내용이어서 수학시간만큼은 긴장이 풀렸어요”
그래서 차츰 같은 반 미국 학생들의 숙제도 도와주고, 시험공부도 같이 하다보니 친구가 생기고 다른 과목 공부의 도움도 받게 되더라고 했다. 한국의 높은 수학 수준이 미국 학교 정착에 윤활유가 된 셈이다.
한국 학생들의 실력은 이제 세계적으로 인정받는 수준이다. 경제협력개발기구(OECD)가 지난해 실시한 40개국의 15세 학생들 학력고사 결과에 의하면 한국은 종합성적 2위이다. 수학, 독해력, 응용문제 해결, 과학 등 4개 분야의 시험인데 종합성적 1위는 핀란드이고, 홍콩, 일본이 3위와 4위를 차지했다.
미국은 독해력 18위, 수학 28위로 종합성적 26위. 교육계와 재계는 학생들의 부진한 수학실력에 특히 우려를 표하고 있다. 학생들의 수학실력이 이렇게 낮아서야 어떻게 21세기 하이텍 시대에 필요한 인력을 조달할 수 있겠느냐는 걱정이다.
미국 학생들 수학 실력은 왜 이렇게 낮은 걸 걸까. LA 3가 초등학교의 수지 오 교장은 미국의 다양성을 지적한다. 영어 한마디 못하는 이민자·불법체류자 자녀들, 교육에 관심 없는 슬럼가 자녀들…온갖 학생들을 다 포용해 가르치는 곳이 미국 학교이니 평균 성적이 낮을 수밖에 없다는 것이다.
아울러 그가 강조하는 것은 시험 성적이 반드시 실력은 아니라는 점. 한국 등 아시아권의 주입식 교육과 달리 미국의 수업은 수학개념에 대한 토론이 많은 게 특징이다. 그런 교육 이 시험 성적 올리는 데는 비효율적이지만 대신 탁월한 이론으로 노벨상을 타는 수학자를 탄생시키는 토양이 되기도 한다.
수학은 한인자녀들의 SAT 총점을 올려주는 효자이기도 하다. 하지만 점수 높이려고 문제풀기 훈련에만 매달린다면 문제는 있다. 15살 때 반짝하는 한국 학생들의 실력이 대학 이후 두각을 나타내지 못하는 현상을 주목할 필요가 있다.
<권정희 미주본사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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