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수민/전 언론인
우리 한인들과 비교해 볼 때 미국인들은 대체로 토론에 능하다. 미국인들이 유난히 논리적이라는 말이 아니라, 아무리 격한 논쟁을 벌인 뒤라 할지라도 감정의 앙금이 남지 않게 관리하는 특별한 재주를 가지고 있다.
내가 보기에 이 특별한 재주는 아주 어렸을 적부터 길러지는 것 같다. 대부분의 미국 부모들은 아이들을 야단칠 때 아이와 아이가 저지른 나쁜 행동을 철저히 분리한다. 즉 “나는 네게 실망했다”가 아니라 “나는 네가 저지른 이러이러한 행동에 실망했다”고 말한다. 인격체로서의 아이와, 그 아이가 저지른 행동이나 말을 분리하는 것은 아이에게 모멸감을 주지 않으면서 잘못을 시정하는 효과가 있다.
또한 초등학교 시절부터 사실(fact)과 의견(opinion)을 구분하는 훈련을 받는 교육이 효과가 있는 것 같다.
우리가 어떤 사건이나 현상을 바라보면서 객관적 사실만을 추려내는 일은 매우 중요한데 우리의 판단은 객관적 사실을 바탕으로 할 때에만 치우치지 않고 균형 잡힌 것이 될 수 있기 때문이다.
토론에서 남의 의견을 공박할 때 그 의견이 기초하고 있는 사실과 그에 따른 입장 차이에 초점을 맞춘다면 굳이 서로 얼굴을 붉혀야 할 필요가 없다.
미국인들의 사실과 의견을 구분하려는 노력은 미국 신문을 보면 확연하게 두드러진다. 일전에 한국의 한 중앙일간지 인터넷 사이트는 KAL 기 사건을 재조사하려는 움직임에 대해 ‘느닷없는 재개봉. 소모전 재연되나’ 라는 제목을 달고 있었다. 미국 신문 같으면 사설이 아닌 이상 보기 힘든 제목이다. 왜냐하면 이미 제목 자체가 주관적 판단을 함축하고 있는, 독자에 대한 월권 행위이기 때문이다. 재조사가 느닷없는 일인지, 소모전인지 아닌지는 기사에서 객관적 사실을 접한 독자가 내릴 판단이다.
미국인들이 대화 중에 가장 중요한 것 혹은 가장 예쁜 것이라고 말하는 대신 ‘가장 중요한 것 중의 하나’‘내가 지금까지 본 것 중 가장 예쁜 것’이라고 표현하는 것도 생각해 볼 만한 일이다. 즉 내게는 이것이 가장 중요하고 가장 예쁜 것일 수 있지만 남들에게는 그렇지 않을 수도 있다는 여지를 남겨 놓는 것이다.
아울러 미국인들은 사람과 그 사람의 직책을 분리하는 능력도 뛰어난 듯이 보인다. 한국에서는 보통 자신보다 나이가 적거나 후배 뻘인 사람이 상사로 오면 사표를 내는 것이 관행으로 되어 있다. 본인의 자존심도 문제거니와 상사로 하여금 편하게 일을 하도록 해야 한다는 배려 때문이기도 하다. 그러나 미국에서는 대부분 사람과 일을 분리하여 직책은 직책, 사람은 사람으로 받아들인다.
한 마디로 미국인들은 사람과, 그 사람의 말이나 행동, 직책 등을 분리하여 그 사람의 인격은 건드리지 않는 기술을 습득하고 있는 것이다. 지극히 합리적이고 이성적인 것 같지만 한편으로는 냉정한 면이 없지도 않다.
친한 사람에게는 자신의 속내를 다 드러내고, 그 상대방이 당연히 자기처럼 생각할 것이라는, 그래서 기대도 많고, 기대만큼 섭섭함도 자주 느끼는 우리 한인들에게는 참으로 특별해 보이는 재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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