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동희 <베데스다, MD>
얼마 전에 친분 있는 분이 타계하셔서 그 분을 추모하고 유가족을 위로하기 위한 모임에 참석했다. 타계하신 분의 인품과 사회를 위해 하신 업적을 되뇌이며 아쉬움과 경애한 마음을 느끼며 유가족과 함께 해드렸다. 그 분께서 그토록 업적을 남길 수 있었던 능력이나 조건도 내조(양처)의 힘이 일조 했으리라 생각되었다.
그런데 처의 근황을 소개할 때 미망인이라고 낱말을 사용하기에 마음이 몹시 씁쓸한 기분이었다. 우리가 순수한 한자로만 해석하면 아직 생존하신 분으로 생각할 수 있지만 낱말이 태동하게 된 동기를 찾아보면 엄청나게 상반된다.
중국 고서 ‘결초보은’이란 책에 보면 춘추시대 진나라에 위무자란 사람이 있었다. 그는 뒤늦게 상처를 하고 젊은 처녀와 재혼을 했다. 늙은 나이에 아리따운 젊은 부인을 보니 얼마나 아름다운지 본처에게서 낳은 아들(과)를 불러 내가 죽더라도 따라서 죽지 않아도 된다고 말했다. 위무자는 병이 들어 악화되자 마음을 바꿔 새엄마를 죽여 함께 묻어달라고 말했다. 몸이 아프고 마음이 혼란해지니 질투가 발동하고 스스로 한 말을 책임지지 못하고 번복한다. 아버지가 병사한 후 위과는 계모를 불러 아버지가 처음에 한 말을 전하며 따라 죽지 않아도 된다고 말했다.
그 후 선공 15년에 진의 환공이 전쟁을 일으켰다. 이 싸움에서 위과는 장군이 되었고 적군에게 힘이 모자라 후퇴를 하는 중 적군에게 거의 생포될 무렵 따라오던 적군의 말들이 쓰러지며 진격해오지 못했다. 위과는 군대를 재정비해 반격하여 크게 승리하고 적군 진의 아름난 장수 두회를 사로잡았다. 한 노인이 적군의 말 발 앞의 풀을 엮어 걸려 넘어지게 해 승리를 할 수 있었던 것이다.
그날 밤 위과의 꿈속에 한 노인이 나타나 말했다. 나는 그대의 계모(미망인·未亡人) 아버지 되는 사람이요. 그대가 선친의 바른 유언에 따랐기 때문에 은혜를 갚은 것입니다 라고 말했다.
미망인이란 낱말은 이미 죽었어야 할 처가 미처 죽지 못했음을 의미한다. 죽음이 둘을 갈라놓을 때까지 열심히 살아주고 내조해 주신 우리 단군자손의 여성들의 헌신과 봉사를 생각할 때 현모양처, 또는 현처라고 명한다면 어떨까 하고 생각해 보았다.
우리가 사는 미국도 1923년까지만 해도 여성들에게는 투표권이 없었다. 지금은 여성 상위시대라고 생각하며 살아간다. 법으로 명문화가 없지만 그만큼 귀하고 중요함을 의미한다.
우리 선조들은 임종을 앞두고 혼자 남을 처에게 가족과 자녀를 부탁하며 임종했다. 그만큼 양처의 능력과 희생정신을 믿고 인정했다. 여자 홀몸으로 세상을 살아갈 처지를 생각할 때 불길한 생각도 들었겠지만 외부의 물리적 힘을 감당 못할 때 현처가 항시 품고 다니는 은장도를 생각하며 가문의 불명예는 없으리라 확신하며 조용히 눈을 감는 숭고한 전통 문화다.
60년대 초반까지만 해도 부고란에 미망인이란 광고를 자주 볼 수 있었지만 지금은 흔치 않다. 우리 선조들이 만든 낱말이 아니라고 확신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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