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민경훈 미주본사 논설위원>
미국인들이 ‘충성의 서약’(Pledge of Allegiance)을 되뇌기 시작한 것은 110년쯤 된다. 이를 만든 사람은 사회주의적 성향이 있던 목사 프랜시스 벨라미였다. 사회주의적 설교 때문에 교회에서 쫓겨난 그는 보스턴 교육감위원회 의장으로 있으면서 사촌이자 사회주의 소설가인 에드워드 벨라미의 ‘국가 통제 하의 만인 평등’이라는 이상을 표현하기 위해 1892년 ‘충성의 서약’을 썼다.
그가 만든 원문은 현재와는 조금 다르다. ‘미합중국의 국기’가 아니라 ‘나의 국기’에 충성을 맹세하는 것으로 돼 있고 ‘하나님 아래 한 나라’에서 ‘하나님 아래’라는 말이 없다. 지금 서약에 들어 있는 ‘하나님 아래’라는 문구는 1954년 가톨릭 애국 상조회인 ‘컬럼버스 기사단’(Knights of Columbus)이 연방 의회를 상대로 캠페인을 벌여 집어넣은 것이다.
벨라미는 여기에 사회주의자들의 이상인 ‘평등’을 넣으려 했으나 여성과 흑인들에 대한 평등을 인정하지 않으려는 사회 분위기 때문에 이를 포기했다. ‘충성의 서약’에 미 건국의 양대 이념인 자유와 평등 중 평등이 빠지고 ‘모두를 위한 자유와 정의’가 들어간 것은 그런 연유에서다. 그는 나중에 교회의 인종 차별적 태도에 반발, 아예 교회 나가는 것을 거부했다.
연방 대법원은 14일 이 서약에 들어 있는 ‘하나님 아래’가 정교 분리 원칙에 어긋난다는 이유로 소송을 제기한 한 의사 겸 변호사의 주장을 기각했다. 이 변호사는 자기 딸이 학교에서 이를 의무적으로 외우는데 분노, 소송을 제기했었다. 싫으면 외우지 않아도 되지만 다른 동료 학생이 모두 외우는데 혼자만 빠지는 것이 사실상 불가능함으로 아예 문구를 빼달라는 것이었다.
그러나 이번 판결로 문제가 해결된 것은 아니다. 기각 이유가 주장이 잘못 됐다는 것이 아니라 한 때 사실혼 관계였던 아이의 생모와 갈라선 후 한 달에 열흘 간 아이를 만나 기르고 있는 아버지로서의 양육권을 인정할 수 없고 따라서 소송 자격도 없다는 것이기 때문이다.
미국의 대다수 학교에서, 중요한 모임이 있을 때마다 미국인들이 수없이 외는 ‘충성의 서약’이 어떤 문구로 이뤄졌는가는 미국이 어떤 나라인가와 밀접한 관계가 있다. 대다수 미국민은 ‘하나님 아래’라는 문구를 자연스레 받아들이지만 소수의 무신론자들은 이것이 양심의 자유를 침해한다는 이유로 삭제돼야 한다고 믿고 있다. 이들에게 이번 대법원 결정은 문제에 대한 답이 아니라 회피에 불과하다.
‘하나님’ 논쟁은 미국이 근본적으로 기독교 국가인가 기독교를 부정하는 계몽주의 철학에 바탕을 둔 나라인가 하는 문제와 직결돼 있다. 이번 판결에도 불구, ‘충성의 서약’을 둘러싼 논쟁은 오랫동안 사라지지 않을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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