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주본사 주필>
프로 골퍼들이 퍼팅할 때 그린 위를 빙빙 도는 것은 그린을 바로 읽기 위해서다. 이쪽에서 보면 분명히 경사인데 저쪽에서 보면 전혀 다르다.
한국에 가서 판문점을 관광하노라면 북쪽 판문각의 험상궂은 인민군 얼굴들이 신경 쓰인다. 남쪽 관광객들의 얼굴을 일일이 카메라로 촬영하는가 하면 사람을 째려보는 눈이 날카로워 가슴이 섬뜩하다. 그런데 북쪽에서 남쪽을 내려다보면 또 그게 아니다.
2년전 평양을 통해 판문점을 구경할 기회가 있었다. 남쪽 한국군 헌병들은 하나 같이 선글라스를 쓰고 있는데 가까이 다가와 우리를 쳐다보는 눈이 기분 나쁠 정도로 인상이 험하다. 어떤 미주 동포 한 분이 헌병에게 손을 흔들며 가까이 가려하자 옆 사람이 놀라 “남쪽 한국군 헌병들에게 사진 찍히면 앞으로 당신은 서울 들어가기 힘들 꺼요”하며 말렸다. 북쪽 판문각에서 근무하는 인민군 초병들은 생각보다 친절했다. 그러니까 어떤 분이 이렇게 말했다. “아니 이 사람들 남쪽에서 볼 때와는 전혀 다르네.”
모든 상황은 어느 쪽에서 보느냐에 따라 모양새가 달라진다. 분명한 것은 한쪽에서만 보면 그린을 잘못 읽는 실수를 범한다는 사실이다. 2차 세계대전 때 원자폭탄 제조에 참가한 존 힐튼이라는 교수가 이렇게 말한 적이 있다.
“나는 원자탄 만드는데 스스로 참가한 사람입니다. 과학자는 순수과학만 연구하면 애국하는 것이지 그 나머지는 정치가가 할 일이라고 생각했었습니다. 그러나 히로시마와 나가사키에서 수많은 사람이 죽는 것을 보고 과학이 인류의 이익에 보탬이 될 때만 의미가 있다는 것을 깨달았습니다. 지금은 원폭제조에 관여한 것을 깊이 반성하고 있습니다.”
자신이 살고 있는 국가가 전쟁에 관여할 때 우리의 시각은 한쪽에서만 보는 외눈이 되기 쉽다. 특히 미국은 전통적으로 전쟁 때에는 대통령의 대외정책에 대해 비판을 삼가고 미군들을 영웅 대우 해준다. 제시카 일병의 어처구니없는 무용담도 그렇게 해서 미화될 수 있었다. 그러나 최근 발생한 미군의 이라크 포로 학대사건은 아무리 우리편이라 해도 너무 심하다는 생각이 든다.
오늘 아침(5월4일자) 발행된 인터넷 워싱턴포스트에는 미군이 이라크 포로들을 발가벗기고 고문하는 사진이 5장 실려 있고 뉴욕타임스에는 미군에게 죄 없이 잡혀갔다가 고문당하고 풀려난 ‘아부 메디’(51)라는 이라크 상인의 경험담이 상세히 보도되어 있다. ‘아메리카 뷰티풀’을 노래하는 사람들이 저질렀다고는 믿어지지 않는 비인간적인 내용들이다. 가족들 앞에서 발길질 당하고 감옥에서는 발가벗긴 채 우스꽝스런 포즈를 취해야 하는 모욕감을 이라크인 쪽에 서서 한번 생각해 볼 일이다. 이들은 한결같이 “처음에는 미군을 환영했으나 지금은 증오한다. 후세인의 자리를 미군이 채운 변화밖에 없다”고 입을 모으고 있다.
이라크에서 핵무기도 발견되지 않았고, 후세인이 알카에다를 후원한 흔적도 없고, 9.11테러에도 관련된 증거가 없는데 미국이 무엇 때문에 이라크에서 피를 흘려가며 욕은 욕대로 먹는지 납득이 안 된다. 문제는 부시 대통령이 재선에 집착해 이라크 사태의 심각성을 국민들에게 숨기고 있다는데 있다. “미국은 누구인가.”
요즘처럼 헷갈리는 때가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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