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영옥/수필가·엔지니어
“이 사람은 아주 오래 전부터의 식의로서 중국 황제의 식의가 생겨난 기원이 이 사람이라고 합니다. 이 사람은 집안의 노비로서 온갖 궂은 일을 다 하나 또한 집안의 모든 사람의 스승이라고도 합니다” 얼마 전에 막을 내린 인기 드라마 ‘대장금’에서 장금이 위기에 처한 사부를 살리기 위해 대비에게 낸 퀴즈이다. 드라마를 보며 남편은 고개를 갸우뚱했지만, 나는 단박 ‘엄마’라고 손뼉까지 치며 자신 있게 말했다. ‘온갖 궂은 일’ 과’집안의 모든 사람의 스승’이 내게는 결정적인 힌트였다.
대학시절, 고만고만한 동생 다섯과 엄마 없이 몇 달 지내야했던 시기가 있었다. 이민을 앞두고 엄마가 먼저 미국으로 떠나시고 우리 여섯 자매는 서울 근교의 외할머니 댁 가까운 곳에 집 한 채를 빌려 외할머니가 돌보아주셨다. 외할머니 댁은 깊숙이 들어간 농가마을에 있었고, 우리가 임시로 빌려 살던 집은 신작로 가까이 새로 개발된 곳에 있었다.
그 때만 해도 웬만한 집에는 재래식 변소가 있어서 변기가 차면 변소 푸는 아저씨가 삯을 받고 지게로 퍼나갔다. 그런데 한번은 웬일로 한동안 우리 사는 골목에 아저씨가 나타나질 않았다. 외할머니는 며칠동안 매일 골목을 서성거리시며 집 나간 자식이라도 기다리는 간절함으로 아저씨를 눈이 빠지게 기다리셨다. 그러시기를 한 일주일 하시더니 “안되겠다. 내일은 무슨 수를 써야지…” 하셨다. 다음 날 외할머니는 어디서 똥 지게를 빌려와 직접 퍼서 외할머니네 밭으로 지게에 저 나르셨다. 집안의 노비로서 온갖 궂은 일을 다 하는 엄마의 모습은 엄마의 엄마를 통해 그렇게 일찌감치 내게 각인되었다.
그러나 이 사람은 ‘또한 집안의 모든 사람의 스승’이다. “보고 배운 게 있어야지…”라는 말보다 더 치명적인 모욕은 없다. 그 보고 배우는 대상, 즉 스승이 바로 다름 아닌 집안의 어머니이다.
우리 여섯 자매는 자라면서 엄마의 남다르게 부지런하고 깔끔하신 성격 때문에 참 고달팠다. 늘 쓸고 닦으셨고, 딸들의 옷장과 책상서랍, 심지어는 핸드백까지도 그 정돈상태를 확인하기 위해 불시에 검문을 하곤 하셨다.
풀타임으로 일하시면서도 간장 된장을 손수 띄우셨고, 갖가지 김치를 집에서 담가 식탁에 올리셨고, 스웨터를 손으로 짜서 입히셨고, 커튼과 침대보를 직접 만들어 걸고 덮으셨으며, 웬만한 집 내부 수리도 손수 하셨다. 우리 여섯 자매는 자라면서 하나같이 “난 이담에 절대 엄마처럼 살지 않을 거야. 편하고 쉽게 살 거야”라고 결심했었다. 그러나, 각기 가정을 가지고 살아가는 우리의 오늘의 모습을 보면 그 결심은 이루어지지 않은 듯 하다. 그 스승에 그 제자들이 되었다. 결혼식 때 들러리들의 드레스를 직접 만들어 입힌 제자, 김치를 꼭 집에서 담가 먹는 제자, 하루에 집안 청소를 두 번 하는 제자, 옷을 각지게 개켜 자로 잰 듯 반듯하게 정돈해 놓고 사는 제자, 남의 집에 가서도 부엌 개수대가 지저분하면 팔을 걷어붙이고 수세미로 닦아주지 않고는 못 견디는 제자, 변기가 늘 반짝반짝 윤이 나야 직성이 풀리는 제자들이 되었다. 칠순이 넘으셨음에도 ‘스승’은 아직도 수시로 장거리 전화로 ‘제자’들에게 요리, 민간요법, 원예 등을 가르치신다. ‘스승’은 여섯 제자들에게 어제도, 오늘도, 내일도 든든한 태산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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