채영창 <워싱턴 통합한인학교 이사>
한국의 오 마이 뉴스에 ‘의를 쫓는 사람들’이라는 시리즈를 연재하며 모국의 산하를 울리고 있는 박도 시민기자(61)가 워싱턴에 나타났다. 백범 김구 선생의 암살범 안두희의 배후를 캐고자 일생을 바치는 권중희 씨(67)와 동행했다. 매릴랜드 칼리지 팍에 있는 미 국립문서 보관소에서 안두희의 배후에 관한 조그만 단서라도 찾기 위해서다. 특히 안두희의 입에서 나온 김구 선생의 정적이었던 ‘이승만의 연루설’에 관한 정보를 확인하는데 비중을 두고 있다.
이들을 환영하는 동포들의 단촐한 모임이 지난 2월 7일 워싱턴의 한인타운 아난데일의 한 음식점에서 열렸다. 민족정기 회복을 외치는 권씨의 말에 귀를 기울이는 동포들은 20대 젊은이와 60대 이후의 노년층이 대부분으로 중년층은 상대적으로 적어 보였으며 많은 참석자가 모국통일운동에 관심을 보이는 인사들이었다.
박은식 상해 임시정부 대통령의 손자인 박유종 씨(64)와 개화기 소설 ‘상록수’의 작가 심훈의 아들 심재호 씨(68) 등이 오랜만에 모습을 보였고 김응태(66) 워싱턴 평통 회장은 안두희가 형님의 친구로 어릴 적에 안두희의 담배 심부름을 한 적이 있다고 말하기도 했다. 신필영 6.15 남북공동선언 실현 재미동포 협의회 의장도 이들과 어울렸다.
‘의를 쫓는 사람들’은 박 기자가 모국의 독립과 민주화운동, 통일운동에 앞장섰지만 끝내 열매는 엉뚱한 사람이 거두어 갔거나 운동 중 여러가지 이유로 그 대열에서 소외된 사람들을 찾아 취재 보도하는 기획기사이다. 그 첫 기사가 80년대 민주화운동의 기폭제 역할을 했던 고 박종철 군의 아버지 박정기 씨였고 두 번째가 권중희 씨였다.
권씨에 관한 8번째 시리즈에서 권씨가 안두희의 배후를 캐기 위해서는 미국에 있는 국립문서 보관소에 가고 싶다는 기사가 나간 후 네티즌들의 큰 호응으로 박 기자와 권씨를 미국에 보낼 모금운동이 벌어지고 곧 3,000만 원이 넘는 돈이 걷혀져 ‘의를 쫓는 사람’ 일행이 워싱턴에 오게 됐다.
이들이 과연 소기의 성과를 거둘 지는 알 수 없지만 그 기개와 뜻만은 높이 평가받을 만 하다. ‘민족정기’. 너무 흔하고 상투적인 말이 돼버린 감이 없지 않지만 얼마나 가슴 아련하고 질감 있는 말인가. 박 기자나 권씨는 물론 이날 연사로 나선 사람들이 하나 같이 민족정기와 관련하여 분개한 것은 한국 정치인의 부패와 몰 역사성이었다. 젊은이부터 노년층에 이르기까지 예외가 없었다. 그러나 한편 냉정하게 생각해 보자. 이런 정치인을 선택한 것은 누구인가. 그들이 하늘로부터 떨어졌는가. 그들 모두 국민들이 자유로운 선거를 통해 투표로 뽑은 ‘선량’들이 아닌가. 욕은 하면서도 자기와 연이 닿는 사람만을 선택하는 비굴한 대중들. 이들의 자각이 없는 한 ‘의를 쫓는 사람들’의 할 일은 쉼이 없을 것 같다. 너나 나를 탓할 것 없이 한민족은 이 같은 ‘부정의 피’ 속에 갇혀있다. 오늘의 한국사회와 동포사회상이 이를 잘 대변한다. 권씨의 외침을 들어야 할 대상은 부패한 한국 정치인이 아니라 그들을 선택한 바로 ‘너와 나를 포함한 부패한 한민족’이다.
모국 해방당시인 60년 전의 ‘민족정기 수준’에서 우리는 아직까지 헤어나지 못하고 있다. 역사의식의 정체 현상이다. 해방 후와 비교하여 여타부분은 큰 발전을 이루었으나 민족의 정신적 성숙도는 그 자리를 맴돌고 있는 셈이다.
‘의를 쫓는 사람들’이 굳이 워싱턴까지 올 필요가 있었겠는가. 이곳에도 10만의 한민족이 살고 있는데 이들이 필요한 것을 우리가 메워줄 수는 없었던 것인가.
동포의 한 사람으로서 자괴감을 떨쳐 버리기가 어렵다. 한편 미주 한인사회에도‘의를 쫓는 사람들’이 필요하다. 21세기 시대정신인 정의와 평화를 지키고 진작시키기 위해서는 이들이 역할이 절실하다. 미술사가 유홍준이 다녀가는 곳은 문화유적지가 된다는 말이 있듯이 미주의 항일 유적지와 민주화운동의 유적지도 박도 기자의 발걸음을 기다리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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