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민경훈 미주본사 논설위원>
아람어는 멸종 위기에 놓인 군소 언어의 하나다. 히브리어나 아랍어와 같은 계열인 셈족어인 이 언어는 지금은 시리아 산악 지대에 사는 1만여 시골 사람들을 비롯 전 세계에서 50만 명 정도가 사용하고 있을 뿐이다. 그러나 이 말이 과거 한 때 ‘반짝’ 한 적이 있었다. 기원전 500년 페르샤가 이를 공용어로 채택하면서 이 언어는 한 동안 중동 지역 만국 공통어로 쓰였다.
이 말을 사용한 사람 중 가장 유명한 이는 나사렛 예수다. 예수는 유대인이었지만 당시 갈릴리 지방 사람들은 아람어를 사용했다. 예수가 십자가에서 외쳐 한국인들에게도 친숙한 “엘로이, 엘로이, 라마, 사박다니”(주여, 주여, 왜 나를 버리시나이까)가 바로 아람어다.
예수가 아람어로 직접 말하는 것을 듣고 싶은 사람에게는 좋은 소식이 있다. 처음부터 끝까지 아람어와 라틴어로 예수 생애의 마지막 12시간을 그린 영화가 나왔기 때문이다. 지금 미국 전역을 시끄럽게 하고 있는 멜 깁슨 작 ‘그리스도의 수난’이 그것이다. 유대교 측에서는 “히틀러 이후 가장 유대인을 모독한 영화”라며 발끈하고 있고 일부 기독교인들은 “모처럼 만에 할리웃에서 예수의 실상을 정확히 그려냈다”는 찬사를 보내고 있다.
독실한 가톨릭 신자인 깁슨은 유대인들의 입김이 센 대형 영화 제작사가 관심을 보이지 않자 사재 3,000만 달러를 털어 이 영화를 만들었다. 예수의 실상을 있는 그대로 보여주고 싶었다는 게 그의 변이다. 예수의 일생을 가지고 영화를 만들면 유대인들이 불리하게 되는 것은 어쩔 수 없다. 무고한 예수를 고문한 후 죽인 것은 아무도 부인 할 수 없는 사실이기 때문이다. 이로 인해 유대인들은 기독교가 세력을 잡은 후 ‘그리스도의 살인자’라는 이유로 숱한 박해를 받아왔다.
이 영화가 예수의 진실을 그대로 그렸는지에 대해서는 기독교인들 사이에서도 의견이 갈린다. 너무 폭력적인 부분만 강조되고 정신적, 영적 측면이 부족하다는 주장이 있는가 하면 충격 효과만을 노려 예술성이 결여돼 있다는 비판도 있다. 실제로 관객 중 한 명은 무자비한 매질 장면에 놀라 심장마비로 숨을 거뒀다.
그러나 이런 여러 지적에도 불구하고 일요일에만 교회에 나가 사업이 잘 되기를 기도하는 교인들에게 과연 기독교와 예수의 본질은 무엇인지 한번쯤 돌아보게 하는 효과는 충분히 있는 것 같다. 깁슨은 이 작품에서 기독교의 바탕에는 세계의 고통과 그 고통을 짊어지고 가는 구세주의 희생이 깔려 있다는 사실을 강렬하게 부르짖고 있다.
이 영화는 개봉되기 전부터 일부 교회와 신자들이 수 천장씩 표를 구입해 단체관람하기도 했다. 어느 이민 사회보다 교회에 가는 사람들이 많은 한인들은 한번쯤 볼만한 작품이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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