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직 추수감사절도 지나지 않았는데 싸늘한 날씨는 겨울이 다가오고 있음을 알리고 있다.
성급한 마음으로 벌써부터 크리스마스 트리를 준비하는 사람들이 있는가 하면 대목경기를 준비하는 업소에서는 크리스마스 캐롤이 흘러나오고 있다. 아, 벌써 겨울인가. 한 해가 참으로 빨리도 간다는 느낌을 떨칠 수 없다.
겨울은 분명히 다른 계절에 비해 어두운 계절이다. 날씨가 춥고 을씨년스러우니 자연히 바깥 활동이 위축된다. 노약자들에게는 감기 등으로 건강을 위협하는 계절이기도 하다. 간혹 사계절 중에 겨울을 좋아한다는 사람이 있긴 하지만 봄, 여름, 가을을 좋아하는 사람들에 비하면 아주 극소수에 불과하다. 그만큼 겨울은 인기 없는 계절, 심하게 말해서 죽음의 계절이라고 할 수 있다.
더욱이 겨울의 한 가운데 있는 연말은 다사다난한 시즌이다. 비즈니스를 하는 사람들은 일년을 결산해야 하고 공사의 인사치레 등으로 시간에 쫓기게 된다. 쓸데없이 사람들의 왕래만 많아져서 교통난이 이만저만 아니다. 나이가 많은 사람들은 부질없이 나이만 한 살 더 먹게 되니 이제 죽을 날만 가까워 오는구나 하는 쓸쓸한 생각마저 갖게 된다.
그런데 우리의 젊은 시절에는 연말이 그렇지 않았다. 마냥 즐겁기만 했던 계절이었다. 연인과 사랑을 나누고 선물을 주고 받는 행복한 계절이었다. 때마침 흰 눈이라도 펄펄 내리게 되면 그야말로 파라다이스의 계절이었다. 나이를 한 살씩 더 먹는 것이 무엇이 그렇게도 좋았던지, 손 꼽아 기다리던 연말과 새해가 아니었던가.
겨울이 좋은 계절이 아니라고 느끼는 것은 결코 겨울이 좋은 계절이 아니기 때문이 아니라 겨울을 느끼는 마음이 메말랐기 때문이다. 사람들이 세상을 살아가다 보니 모든 것을 이해타산에 맞추어 보게 되어 겨울과 연말의 참 맛을 느끼지 못하기 때문이다.
겨울을 예찬한 시인 T.S. 엘리옷은 이렇게 읊지 않았던가. 사월은 가장 잔인한 달, 죽음의 땅에서 라일락을 자라게 하고 욕망의 기억을 뒤섞어 놓고 봄비로 무딘 뿌리를 휘저어 놓는다. 겨울은 우리를 따뜻하게 하였다. 잊혀진 눈으로 대지를 뒤덮고 마른 줄기 식물로 생명을 먹여 기르나니... 우리는 바깥에 찬바람이 휘몰아치는 겨울에 따뜻한 실내에서 더욱 따뜻함
을 느낄 수 있으며 추운 겨울일수록 커피 한 잔의 훈향을 더욱 즐길 수 있다.
이 추운 겨울과 연말을 사람들은 흔히 사랑의 계절이라고 한다. 크리스마스와 연말연시의 시즌에는 한 해 동안 기억 속에서 함께 지냈던 사람들에게 안부를 전하고 불우한 이웃에게 사랑의 마음을 전하기도 한다. 19세기 영국의 명재상인 디스렐리는 “우리는 사랑을 위해 태어났다”는 명언을 남겼고 간디는 “사랑이 있는 곳에 생명이 있다”고 했다.
사랑의 계절인 겨울에 사랑을 소유하지 못한 사람은 추울 수 밖에 없다. 태어난 목적이 없고 생명이 없기 때문이다.
사랑에는 남녀간의 사랑인 에로스도 있고 종교적인 사랑인 아가페가 있다고 하지만 결국 본질적으로는 하나라고 생각된다. 나를 희생하여 남에게 주는 것이 곧 사랑이요 이러한 사랑이 작용할 때 에너지가 방출하여 힘과 용기를 발생시키는 것이다.
이 사랑은 우리의 몸이 자라듯이 유아기에는 어머니만 사랑했고 어릴 때는 장난감과 애완동물로 옮겨 갔다가 점점 커지면서 친구, 애인, 그리고 국가와 민족, 인류로 확대되어 간다. 그러나 사랑하는 마음은 대상이 무엇이든 똑같은 감정이다. 가족을 사랑하지 못하는 사람이 친구와 애인을 사랑할 수 없고 애인을 사랑하지 못하는 사람이 국가와 민족, 인류를 사랑할 수는 없다.
우리의 작은 이웃을 사랑하지 못하는 사람이 인류를 사랑하고 하나님을 사랑한다고 말하지는 말자.유명한 심리학자인 에릭 프롬은 다음과 같이 말했다. 성숙하지 않은 사랑은 “나는 너가 필요하기에 너를 사랑한다”고 하고, 성숙한 사랑은 “나는 너를 사랑하기에 너를 필요로 한다”고.
이제 추운 겨울이 오지만 이 겨울이 사랑의 계절이 될 때 우리에게 따뜻한 겨울이 될 것이다.
이기영(주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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