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욕시 명물로 수백만 뉴요커를 실어 나르던 붉은색 7번 전철이 완전히 사라졌다.한인을 비롯 이민자들이 가장 많이 사용하는 7번 전철 중 1950년대와 1960년에 만들어져 40년 이상 서민들의 발이 되었던 붉은색 객차가 노후화에 따라 지난 3일을 기해 운행을 마치고 영원한 휴식처인 대서양에 수장되는 것이다.
플러싱 메인스트릿에서 맨하탄 타임스퀘어까지 지상과 지하를 넘나들며 쉼 없이 달리던 이 객차들은 인공 암초 형성을 위해 제 몸을 바친다.평시에는 로칼로, 러시 아워에는 익스프레스로 운행되는 이 전철은 한인, 중국인 밀집지역인 플러싱에서 많은 동양인을 태우고 달린다 하여 ‘오리엔탈 익스프레스’라고도 불리었고 차체에 칠해진 붉은색으로 인해 ‘레드 버드’(Red Bird)라고도 불리었다.
원래 파랑색이었으나 낙서 방지 및 1964년 플러싱 메도우 코로나 파크에서 열린 세계 박람회를 기념하기 위해 붉은색으로 바뀌었다. 이 객차의 출발지인 플러싱은 한인들이 다수 모여 사는 지역이라 이민 초창기 시절 수많은 한인들이 이것을 타고 일하러 나갔었다. 한겨울이면 컴컴한 신새벽에 집을 나서 아직 문을 열지 않은 가게 앞을 지나 메인스트릿 역에서 덜컹거리는 차체에 몸을 싣고 가다보면 플러싱 벌판으로 희미하게 밝아오는 새벽을 맞기도 했다.
살기에 바빠 계절이 오가는 것도 잘 못 느끼다가 어느 날 갑자기 나무의 가지에 새파란 순이 막 움트는 것을 보고 봄이 왔음을 알았다. 입김이 허옇게 나오는 한겨울이면 연착과 정차를 수시로 해 출근자들이 무더기로 지각 사태를 빚게 만들기도 했다.
붉은색의 육중한 차체가 안정감을 주어 일단 타면 목적지까지 거대한 자가용에 탄 것처럼 편안한 상태로 멍청하니 앉아있기도 하고 끝없는 상념에 빠지기도 하며 참으로 고맙게 이용해왔는데 이제 맡은 바 소임을 다하고 역사 속으로 사라졌다.
불법 체류자로 아메리칸 드림을 이루고자 밤낮없이 일하는 이민자들은 고국의 부모님 사망 소식에도 가볼 꿈도 못꾸고 일터로 나가면서 눈물바람 하기도 했다. 이민생활이 정말로 만만치가 않아 사는 것이 힘들어 한숨을 내쉬고 속을 태우기도 하는 등 이민자의 각종 애환이 스며있기도 하다.
플러싱에 사는 나 역시 지금은 차를 갖고 다니지만 이민 온 첫 해부터 10년 이상 이 붉은색 전철을 타고 다녔다. 10칸 정도의 기나긴 객차 어딘들 안 앉아보았으며 어느 손잡이엔들 내 손때가 묻지 않았을까.봄, 여름, 가을, 겨울 4계절을 10번 이상이나 이 전철에서 맞고 보낸 나는 특히 잊을 수 없는 것이 미국에 온 지 한달 만에 이력서를 들고 생전처음 이 객차를 탔을 때이다.
퀸즈 보로 플라자 역 인근의 한국일보사에 가기 위해 플러싱 메인 스트릿 종점에서 아장아장 걷는 갓 두돌 지난 아이의 손을 잡고 전철을 탔다. 지하역에서 출발한 객차가 컴컴한 굴로 들어가더니 덜커덩거리는 차량의 움직임에 따라 몇 초간 불이 깜빡깜빡 들어왔다 나갔다. 어두운 차창 밖 모습이 보였다 안보였다 해 마치 환시같아 겁이 더럭 나서 아이의 손을 꼭 잡았던 기억이 지금도 새롭다. 그 아이가 지금 대학을 가려고 입시 원서를 준비 중이다. 그리고 미국 온 지 3년된 어느 겨울날 친정 아버지가 위독하다는 소식을 접하고 1주일간 한국 나갈 준비를 하며 출퇴근길 전철 안에서 빈 하늘을 바라보며 눈물을 질금거렸던 기억은 잊을 수가 없다.
아내를 몇 년 전 먼저 보내고 외로이 살던 아버지는 김포공항까지 배웅을 나오셔서 가서 잘 살라고 웃으면서 손을 흔들어주셨다. 그때나 지금이나 사는 게 수시로 힘든 것은 마찬가지인데 3년동안 무엇이 겁나고 무엇이 그리 모자랐기에 단 한번도 서울쪽을 쳐다보지도 않았을까?
스쳐 지나가는 넓은 플러싱 벌판과 그 위의 텅 빈 하늘을 보며 가슴이 미어지던 그 기억은 이 붉은색 전철과 함께 내 삶의 한 페이지를 장식했다. 이제 그 가쁜 숨을 멈추고 영원한 안식처로 간 레드 버드여, 아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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