태초에는 오늘과 같은 히말라야는 없었다고 한다. 대신 인도와 티벳 사이에 얕은 바다가 가로질러 있었는데 어느 땐가 머나먼 옛날 티벳으로부터 밀려와 인도의 단단한 지각에 부딪힌 큰 압력 때문에 어처구니없이 높아져 지금의 히말라야가 됐다고 한다.
그런데 지금도 히말라야 6,000∼7,000m의 높은 지대에서 먼 옛날 바다에서 살았던 생물들의 화석이 나타나고 있다는 것이다.이렇게 생성된 히말라야 산맥의 비밀이 세상에 알려지기는 아주 최근의 일이었다.
에베레스트가 세계 최고봉이라고 밝혀진 것도 1852년이었고 그후 인도정부의 본격적인 조사에 의해 8,000m가 넘는 봉이 14개, 7,000m 이상의 봉이 350개나 된다는 사실이 드러남에 따라 19세기 무렵부터 선진열강들이 히말라야에 진출하기 시작했다.
네팔에는 도로가 별로 없었다. 그래서 우리 일행은 제2의 도시인 포카라까지 비싼 운임비를 지불하면서 항공편을 이용해야 했는데 놀랍게도 포카라 공항에는 건물 한 채 없고 더욱이 활주로도 없는 넓은 풀밭에 항공기가 오르내리는 것이었다. 항공기 이착륙시 풀을 뜯고 있는 소 떼를 몰라 내기 위해 많은 사람들이 긴 장대를 휘두르며 이리 저리 뛰는 진풍경이 벌어지기도 한다.
이곳에서 20 여명의 인부를 고용, 우리 대원 4명이 쉘파들을 앞세운 30 여명의 일행은 9월4일 포카라를 출발, 길고도 긴 카라반을 시작했다.
몬순 기간이라 매일 같이 비를 맞으며 행군을 하는 중 가장 괴로웠던 것은 거머리 떼들과의 싸움이었다. 사람냄새를 맡고 나무에서 떨어져 몸에 달라붙어 피를 빨아먹는 거머리들과 전쟁을 벌여야 했다.
카라반을 시작한 지 9일이 지나 ‘마얀디’ 계곡의 깊은 정글을 뚫고 올라가야 했다.햇볕도 보이지 않는 정글지대라 불과 2km를 전진하는데 하루가 걸리기도 했고 천막 칠 자리가 없어 앉아서 새우잠을 잔 적도 한 두 번이 아니었다. 게다가 비는 매일같이 쏟아지는 고난의 행군이었다. 7일만에야 지독한 정글을 벗어나 고산지대에 도달했고 포카라를 떠난 18일만에 해발 4,100m 지점에 베이스 캠프를 쳤다.
10월에 접어들자 몬순이 걷히고 쾌청한 날씨가 계속돼 해발 4,600m의 제 1캠프에 뒤이어 해발 5,200m에 제2 캠프를 설치한 우리는 본격 정찰등반을 실시한 결과 우리의 목표인 다울라기리 2봉에 오를 수 있는 루트를 발견하고 카투만두에 돌아왔다.
돌아와보니 중국과 인도사이에 전쟁이 발생, 치열한 전투가 벌어지고 있었다. 인도는 네팔 항로를 취소, 이로 인해 인도 항공기만 드나들던 카투만두 공항이 폐쇄됐고 국경 역시 봉쇄됐다. 길이 막혀 갈 수도 없고 그렇다고 언제 끝날 지 모를 전쟁 때문에 갇혀 지낼 수도 없으니 난처한 일이었다. 걸어서라도 국경을 넘기로 하고 육로로 카투만두를 떠나 국경까지 도착했다. 다행히 중국에서 온 게 아니라 한국으로 돌아가는 등반대임이 인정돼 역마차로 국경을 넘어 인도의 기차역에 도착했다.
그런데 이게 웬일인가. 손에 칼, 쇠몽둥이 같은 흉기를 든 분노에 찬 수 많은 인도인들이 고래고래 소릴 지르며 잠깐 사이 우리를 둘러싸더니 당장 쳐죽일 기세였다. 전쟁에서 인도군이 지고 있었기에 극도로 감정이 악화된 인도인들은 중국인들을 보는 대로 습격, 방화, 약탈, 살인을 저지르고 있었다.
같은 동양인이고 중국 쪽에서 왔다는 이유로 우리 일행은 중국인 스파이로 오해받았다. 이들은 당장이라도 우릴 죽일 태세였으나 그중 영어를 약간 하는 사람이 나타나 간신히 위기를 면할 수 있었다.이 일이 있은 뒤 악몽에 시달렸고 온몸에 달라붙던 거머리들과 함께 표독한 눈초리로 노려보던 인도인들로부터 벗어나는데 오랜 시일이 걸렸다.
어려운 시기에 너무 무리하게 일을 추진했기 때문에 그 후유증 또한 커서 다시 히말라야에 오른다는 것은 당분간은 불가능했다. 그래서 필자가 눈을 돌린 곳이 일본이었다.
이때 일본은 1965년 에베레스트 등반을 위해 거국적인 준비를 하고 있을 때라 필자는 한국 산악계의 히말라야 고봉 등정 기간을 적어도 5년은 앞당길 수 있는 일본 등반대 참가를 추진했다.
당시 일본 산악회 회장이었던 마쓰가다 사부로의 협조로 일본등반대에 합류할 계획이었으나 일본과 수교가 없던 한국이 미 수교국이었기에 비공식 대원으로 참가키로 했다.
필자는 이에 앞서 더 높은 고산등반 기술연마를 위해 스위스로 건너가 알프스 고봉에서 빙하와 빙벽 기술을 쌓고 출발날짜를 기다리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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