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9.11 한인 희생자 유가족들이 2년만에 다시 만나 그간의 안부 등을 묻고 서로를 위로하고 있다.<김재현 기자>
9.11 테러가 발생한지 두해째가 됐다. 그러나 일반인들은 당시의 아픔과 분노와 슬픔이 어느정도 줄어들었겠지만 육친을 잃은 유가족들은 그렇지 않다. 특히 사랑하는 자녀를 떠나보낸 부모들은 세월과 함께 오히려 슬픔과 괴로움이 더욱 깊어지고 있다. 이들은 아직도 실감이 나지 않는다고 말하기도 한다. 그러나 한인 유가족은 이제 지난 슬픔을 묻어놓고 희생자들이 못다 이룬 꿈들을 대신하려한다. ‘한인 9.11 기념 재단’을 설립하고 추모 사업을 본격적으로 벌이기로 했다. 9.11을 앞두고 몇몇 유족들이 7일 맨하탄 강서회관에서 만나 나눈 사연을 지상녹음한다.<편집자 주>
<참석자>
김평겸·이화옥씨(고 김재훈 부모)
추교중·추수현씨(고 추지연 부모)
강성순·강필순씨(고 강준구 부모)
신정혜씨(고 박계형 모)
-9.11 테러 2주년을 맞는 느낌과 희생자에 대한 기억은?
■신정혜=그때보다 지금이 더 마음이 아프고 애통하다. (고 박계형씨는 당시 28세로 월드트레이드센터 89층에 있는 메트라이프사에서 근무하고 있었다) 딸이 없으니까 미국생활에 대한 희망이 없어진 것 같다.독실한 기독교 신자였던 딸은 매일 새벽기도에 갔다가 출근하곤 했다. 9.11 당일에도 새벽기도를 갔다온 뒤 몸이 안좋았던 어머니에게 다리를 주무르는 등 마사지를 해주고 출근했다가 변을 당했다. 남동생이 있지만 딸이 나의 희망이었다.
■추교중=참사가 있기 얼마 전 우리 지연이가 부사장으로 승진했다고 기뻐했던 모습이 떠오른다. (딸인 고 추지연씨는 월드트레이드센터 104층의 증권투자회사인 캔터 핏제랄드사에서 근무하고 있었으며 당시 31살이었다)
항상 딸이 자랑스러웠다. 9.11 전날 저녁 10시30분쯤 전화통화를 했는데 학교에 다녀온 뒤 무척 피곤하고 힘들어해서 부모로서 안타까운 마음이었다.언론에서 9.11 관련 보도가 될 때마다 더욱 지연이가 그립고 마음이 아플 뿐이다.
■강성순=자식잃은 부모 마음이야 다 똑같다. 지금이라도 ‘아버지’하고 들어올 것만 같다. (아들 고 강준구씨는 종가집의 종손이다. 당시 34세였던 강씨는 104층에 있는 캔터 핏제랄드사에서 매니저로 근무하고 있었다)
엄청난 일을 겪고 나니까 너무 기가 막히다. 살기 좋고 자유가 있는 미국에 올 때는 큰 마음을 품고 왔다. 아들이 어릴 적부터 부모의 말을 잘 듣고 좋은 학교 나와서 직장 잘 다니고 있어 미국에 잘왔다고 생각했는데...(울음)
준구는 항상 웃는 낯으로 부모에게 효도하고 교회도 열심히 다녔다. 결혼해서 딸 2명을 키우는 착실한 가장이었다. 나에게는 친구같은 아들이었는데 이런 변을 당하고 보니 항상 옆자리가 비어있는 기분이다. (옆에 앉아있던 어머니 강필순씨는 아들이 ‘너무도 보고 싶다’고 되내었다).
아쉬운 점이 있다면 아직 아들의 유품도 찾지 못한 것이다.
■김평겸=아직도 실감이 나지 않는다. 앤드류는 신앙이 좋아 교회 봉사 활동을 열심히 했다. (영어 이름이 앤드류였던 고 김재훈씨는 당시 26살이었으며 기관투자자문회사인 ‘프레드 앨저 매니지먼트사에서 근무하고 있었다.)참사 2년째인데 이제는 슬픔을 묻어놓고 희생자들이 못다한 일을 해야 할 때라고 생각한다. 개인적으로 테러리스트와 전혀 무관한 한인들이 왜 희생돼야 하는 지 의문이 든다. 역사가 규명을 해주겠지만 앞으로 이런 일이 없었으면 좋겠다.
-테러 참사 이후 전쟁 등 미국사회에 큰 변화가 많았는데
■강성순=그동안의 언론 보도를 보면 테러 배후인 오사마 빈 라덴을 잡을 수도 있었고, 그랬다면 테러도 미연에 방지할 수 있었다는 생각에 더욱 아쉽다. 현재 이라크 문제가 완전히 해결돼 더 이상의 테러가 지구상에 없었으면 한다. 희생자 부모로서 세계의 평화가 빨리 왔으면 하는 마음이다.
■신정혜=우리 딸이 희생된 것은 당연히 마음 아프지만 각종 전쟁으로 어린 청년들이 전장에서 죽는 것을 보면 가슴 아프다. 세상이 어떻게 될려고 이렇게 전쟁이 많이 나는지.우리 딸은 이미 죽었지만 다른 청년들이 전장에서 희생되는 것도 안타깝다.
■추교중=미국이 더 이상 테러를 당하지 않도록 본토를 굳건히 지켰으면 한다.
■김평겸=왜 이런 일이 있어야 하는지 너무도 답답하다. 한인들은 중동 문제와 아무런 상관이나 이해관계가 없는 사람들이다. 무고한 희생을 어떻게 해석해야 할 지 모르겠다. 미국사회가 정치적인 문제에서 벗어나 평화를 정착하는데 노력했으면 하는 마음 뿐이다.
지난 5월 노무현 대통령이 방미했을 당시 함께 그라운드제로에서 나눈 얘기가 있다. 노 대통령은 희생자들이 못다한 꿈을 이룰 수 있도록 해달라고 말했다. 한인 9.11 기념 재단의 모토는 ‘못다한 꿈을 이뤄나가자’로 정했다.
-유가족으로서 그동안 미국 및 한인사회에 바라는 점이 있다면
■강성순=기독교인으로 텅 빈 가슴을 하나님 말씀으로 위로받고 살고 있다. 재림 후 아들과 다시 만날 것으로 확신하고 있다. 교회(순복음뉴욕교회) 등 한인들의 따듯한 위로에 고마움을 느낀다.
■김평겸=한인사회에 무척 감사한다. 테러 직후 한인사회에서 거둔 성금만해도 200만달러
규모다. 유가족들이 미국 자선단체을 통해 받은 성금에도 한인들의 정성이 포함돼 있을 것으로 본다. 한인 유가족들은 그 성금을 기념 재단에 적립하고 있다.재단을 통해 앞으로 한인 2세, 3세들을 뒷바라지 하는데 노력하겠다.
■신정혜=한인사회가 무관심하다고 느낀 적도 있지만 그래도 딸이 다니던 퀸즈장로교회에서 추모기도회를 가져 무척 고마웠다.
-앞으로 계획이 있다면
■김평겸=지난 6월 ‘한인 9.11 기념 재단’을 정식 등록했다. (김평겸씨는 한인 유족회 회장을 맡고 있다.) 재단의 취지는 고인들의 기념비를 설립하고 추모 장학사업을 하는 것이다. 어느 정도 시간이 흐른만큼 이대로 슬픔에만 빠져있을 수 없다는 점에서 추모 사업을 본격적으로 시작할 것이다.
또 미주한인이민 100주년 뉴욕사업회와 공동으로 기념 공원 조성에 노력하고 있다.
이 기념공원은 이민 개척자와 9.11 한인 희생자에 대한 추모탑을 만들기 위한 프로젝트다.그동안 한인 유가족 모임에는 총 18가정이 등록해 있지만 거주지가 달라 예전처럼 자주 만나지는 못하고 있다. 앞으로 유가족 모임도 정기적으로 이뤄질 수 있도록 하겠다.
<김주찬 기자>
댓글 안에 당신의 성숙함도 담아 주세요.
'오늘의 한마디'는 기사에 대하여 자신의 생각을 말하고 남의 생각을 들으며 서로 다양한 의견을 나누는 공간입니다. 그러나 간혹 불건전한 내용을 올리시는 분들이 계셔서 건전한 인터넷문화 정착을 위해 아래와 같은 운영원칙을 적용합니다.
자체 모니터링을 통해 아래에 해당하는 내용이 포함된 댓글이 발견되면 예고없이 삭제 조치를 하겠습니다.
불건전한 댓글을 올리거나, 이름에 비속어 및 상대방의 불쾌감을 주는 단어를 사용, 유명인 또는 특정 일반인을 사칭하는 경우 이용에 대한 차단 제재를 받을 수 있습니다. 차단될 경우, 일주일간 댓글을 달수 없게 됩니다.
명예훼손, 개인정보 유출, 욕설 등 법률에 위반되는 댓글은 관계 법령에 의거 민형사상 처벌을 받을 수 있으니 이용에 주의를 부탁드립니다.
Close
x