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침에 출근해 전자우편함을 열어볼 때마다 짜증을 가누기 힘들다. 하룻밤 새 평균 40여통의 E-메일이 들어오는데 거의 전부가 광고다. 게다가 봇물처럼 밀려드는 스팸메일 중 90% 이상이 ‘나홀로 집에’ ‘프리섹스 클럽’ 등 낯뜨거운 제목이 붙은 성인용 안내문이다. 집에 설치한 컴퓨터의 우편함도 성인용 스팸메일로 넘쳐나기는 마찬가지다. 매일 이들과 씨름하다 보면 미국 전체가 쉰내 나는 ‘하수구 문화’에 포위 당했음을 실감하게 된다.
’하수구 문화’의 전방에는 인터넷을 통해 무차별 보급되는 포르노가 자리잡고 있다. 하루에도 수백편씩 양산되는 포르노는 주로 비디오점을 통해 유통되어 왔지만 요즘은 인터넷이 더 중요한 배급로의 역할을 한다.
사회학자들은 ‘인터넷 시대’의 부작용중 하나로 관음증의 확산을 꼽는다. 인터넷이 타인들의 비밀스러운 장면을 엿보고 싶어하는 인간의 내재적 충동을 효과적으로 충족시켜 주면서 관음 욕구 자체를 확대 재생산하고 있다는 지적이다.
정도의 차이는 있지만 언론매체들 역시 성에 대한 사회적 강박감을 부채질하는데 직·간접적으로 손을 보탠다. 특히 오락적 기능의 비중이 상대적으로 큰 전파매체들의 경우 대중의 기호를 좇아 사회적 섹스코드를 창조하고 전파하는데 중요한 역할을 한다.
그 좋은 예가 무장괴한에게 납치돼 성폭행을 당하고 극적으로 구출된 랭캐스터 소녀 2명의 TV 출연 해프닝이다. 랭캐스터에 거주하는 흑인소녀 타마라 브룩스(16)와 백인소녀 재키 매리스(17)는 지난주 인적이 드문 장소에서 남자친구와 심야데이트를 즐기다 무장괴한에게 납치됐다. 범인은 사건 발생 12시간만에 사살됐고, 두 소녀는 구사일생으로 목숨을 건졌다. 사건이 종료되고, 소녀들이 성폭행을 당한 사실이 알려지자 TV매체들은 이들을 시청자들 앞에 세우기 위해 그야말로 ‘불난리’를 쳤다.
피해자 가족들을 움직여 일찌감치 두 소녀의 ‘신병확보’에 성공한 NBC 방송은 경쟁사들의 접근을 막기 위해 ‘빼돌리기’를 시도했고, ‘먹이’를 쫓아 차량추격전까지 펼친 ABC와 CBS 등은 "ABC측이 피해소녀들 가운데 한 명에게 옷을 사주는 등 방송윤리규정을 어겼다"며 끝까지 딴지를 걸었다. 방송사들은 사건이 종료 직후부터 두 소녀를 브라운관 앞으로 끌어내기 위해 케이티 코리스, 카니 정 등 간판급 앵커들을 앞세워 치열한 ‘물밑공작’을 시도했던 것으로 밝혀졌다. 사생활보호 차원에서 강간피해자들의 신원을 공개하지 않는다는 공인된 관례 따위는 아예 안중에도 없었던 셈이다.
방송사들의 이같은 법석은 ‘인터넷 시대’의 섹스코드인 대중의 관음증과 연결되어 있다.
시청률의 노예인 방송사들은 대중이 미성년자인 강간피해자들의 얼굴을 보고 싶어하고, 이들이 당한 고난의 ‘육성 중계’를 원한다는 사실을 너무도 잘 알고 있었다. 피랍 12시간만에 브룩스와 매리스가 구출되기 무섭게 제일 튀어나온 궁금증은 이들의 강간피해 여부였다.
이같은 분위기를 빗댄 우스갯소리가 있다. 천하의 바람둥이인 카사노바가 지옥과 천국의 갈림길에 설치된 심판대에 섰다. 심문관은 근엄한 얼굴로 그에게 "이승에서 지은 죄를 하나도 빼놓지 말고 낱낱이 고하라"고 명령했다. 그러자 카사노바는 눈을 동그랗게 뜨고 이렇게 반문했다. "지금 제 자랑을 하라는 말씀이신지요?" 카사노바의 예기치 못한 말대꾸에 분노한 심문관은 그에게 지옥행 티켓을 던져주었다. 그러자 카사노바의 뒤에 줄지어선 남녀 망자들이 저마다 지옥행을 자원하고 나섰다. 지옥에선 카사노바와 같은 사람들의 흥미진진한 경험담을 들을 수 있으리라는 생각에서였다.
이 우스갯소리에 등장하는 카사노바는 엽색행각을 자랑스러워하는 뭇 남성들의 초상이고, 심문관은 불순한 호기심을 지닌 관음증 환자, 지옥행을 자원한 무리는 말초적 하수구 문화에 중독된 대중으로 환치가 가능하다.
’하수구 문화’는 중독성과 독성이 유달리 강하다. 청소년들을 이들로부터 보호할 수 있는 대책마련이 시급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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