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뉴스 에세이
▶ 조윤성<부국장겸 특집1부장>
이 아이를 보면 괜히 기분이 좋아진다. 서글서글해 보이는 얼굴에 천진난만한 미소가 가득한 17세. 그의 웃음속에서는 지난 5년동안 희망을 디딤돌로 해 넘어야만 했던 눈물과 좌절의 흔적을 찾아 보기 힘들다.
훌륭한 축구선수가 되겠다는 꿈을 안고 13세의 나이에 영국행 비행기에 몸을 실었던 ‘이산’이라는 이름의 이 겁없는 아이가 지난주 잉글랜드 프리미어 리그 웨스트햄 유나이티드 구단과 정식계약을 맺었다. 웨스트햄 유나이티드는 유소년 축구로는 잉글랜드 최고의 전통과 실력을 자랑하는 명문구단. 16세 이하 팀에서 스트라이커로 맹활약해온 산이가 17세가 되자 구단측은 정식계약을 제안하고 나섰다. 봉급은 월 몇백달러 정도로 아직 보잘 것 없지만 한국인 최초의 프리미어 리거라는 점에서 산이의 계약은 의미가 결코 적지 않다.
산이에 대해 관심을 갖게 된 것은 중동중학교 1학년이던 그가 세계적인 축구선수가 되겠다며 1살 어린 동생, 그리고 엄마, 또 축구선수인 삼촌과 함께 ‘축구종가’ 영국으로 유학을 떠났다는 기사를 우연히 읽게 되면서였다. “그놈 참 당돌하다”는 생각과 함께 산이의 기사가 나올때마다 유심히 읽게 됐고 이 어린 소년이 키가 자라듯 축구 선수로서 쑥쑥 성장해 가는 모습을 지켜 보는 것은 즐거움이었다.
공부도 곧잘 하고 그림까지 잘 그리는 어린 아이가 축구때문에 물설고 낯설뿐 아니라 말도 통하지 않는 이국으로 떠나겠다는 결심을 한다는게 말처럼 그리 쉬운 일은 아니다. 공부도 아니고 축구에 모든 것을 걸었을때는 더욱 그렇다. 불확실함 앞에서는 멈칫 거리게 되고 익숙한 것을 버리는 일은 생각보다 어려운 결단을 요구하는 법이다. 새장에 오래 갖혀 있던 새들은 문을 열어도 새장을 벗어나지 못한다. 불확실한 자유보다는 확실한 지금이 더 편하니까.
어린 산이 또한 그 선택으로 인해 많은 갈등과 번민을 해야 했다. 한 TV방송에서 제작한 산이의 영국생활 다큐멘터리에는 이 소년이 고뇌하고 이를 통해 성장해 가는 모습이 잘 담겨 있다. 2시간씩 전철을 갈아 타며 연습장에 가야 한다든가 집세를 아끼기 위해 수도 없이 이사를 해야 했던 일들은 얼마든 견딜수 있는 육체적인 어려움일 뿐이었다.
그보다는 자기에게 매일 새벽 축구를 지도해 주는 삼촌과 “아이들은 1주일에 2번만 운동을 해야 무릎을 보호할수 있다”며 삼촌 지도방식의 부당성을 지적하는 영국인 매니저 사이에서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할 때 산이는 울음을 터뜨려야 했다. 턱도 없이 부족한 생활비를 벌겠다며 매일 아침 벼룩시장에 나가 짧은 영어로 옷가지와 악세사리를 파는 엄마가 너무 안돼 “엄마도 자기 인생을 즐길 권리가 있다. 축구를 그만두고 한국으로 돌아가겠다”고 우겨 모자가 다투고 화해했을때도 어린 소년의 눈에는 눈물이 흘렀다.
웨스트햄 유나이티드와 정식계약은 경기당 1~2골을 넣는 그의 천부적 자질과 체계적인 축구훈련뿐 아니라 바로 이 눈물이 있었기에 가능했다고 생각한다. 문화차이에서 오는 혼란을 극복해 낸 인내와 부모의 희생을 안쓰러워 하는 어른스러움이 그를 훌쩍 크게 만든 것이 아닐까. 산이의 성장기는 익숙한 것들과의 ‘이산’을 선언하고 이민와 갈등과 번민속에서도 꿈을 잃지 않고 살아 가는 우리네 자화상이기도 하다.
지난 월드컵에서 온국민을 열광케 했던 태극전사들도 대부분 무명의 설움과 좌절을 경험해 본 선수들이다. 그들은 포기하지 않았고 그래서 영광의 주인공이 될 수 있었다. 성공의 달콤한 열매는 항상 도전하는 자의 몫인 것이다. 산이의 정신적 성숙은 그라운드 위에서의 플레이를 더욱 꽃피워 줄 것이다. 앞으로 4년후. 가슴과 다리의 근육이 더욱 커져 21세의 청년으로 당당해져 있을 이 소년이 한국민들을 다시 한번 ‘대~한민국’의 감격속에 빠뜨려 주리라 믿어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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