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즘도 “아이를 볼래, 일을 할래?”하고 물으면 거의가 같은 값이면 일을 하겠다고 한다. 그만큼 아이를 돌보는 것이 힘들다는 이야기이다. 때맞추어 먹이고 기저귀를 갈아주고 잠재우고 때로는 씻어주고…. 또 누워 있을 때보다는 기어다닐 때가, 기어다닐 때보다는 걸음을 배울 때가 아이를 관리하기가 더 힘들다. 특히 천방지축 걸어다니며 저지레를 할 때는 잠시도 눈길을 떼지 못하며 때로는 아이와 싸우기라도 해야 한다.
우리의 경우는 은퇴하고 나서 때맞추어 가진 첫 손자를 둘이서 늘 돌보면서 지난 2년간은 손자가 풍기는 사랑에 빠져 노후의 시간을 즐겨왔다. 그런데 두 달 전 큰며느리가 두 번째 임신사실을 알려 주더니 이번에는 작은 아이가 임신을 공개해 우리가 마침 기다리고 있던 참이어서 감동해 하다가 문득 아이 셋이 눈앞에 크게 다가와 아찔하여 마음에 혼란이 일었다. 그러나 조부모가 되어 황혼기에 피할 수 없는 소명으로 받아들이면서 다시 이민이 주는 의미를 음미해 본다.
그 동안 우리는 미국시민이 되어서도 물위의 기름 방울처럼 미국 속의 한국인이 되어 살아오다가 아예 미국인이 태어난 손자를 보고서는 마치 삽목한 나뭇가지가 뿌리를 내리듯 우리 부부가 미국에 한 가문을 열어 조상이 되는 사명감에 무거운 책임을 느껴본다. 그래서 내 후손들의 운명이 나의 사려 깊지 못한 결정에 의해 미국 땅에서 삶을 창조해가야 할 멍에를 쓴 듯하여 마음이 아파지기도 한다.
여러 인종과 잡다한 민족이 공존하며 다양한 문화가 조화를 이루고 있어도 백인들의 인종적 폭력과 인종간 혐오범죄 속에서 나의 후손들이 어떻게 살아갈 것인지 노파심에서 잠 못 이루는 새벽녘이면 깊은 상념에 빠져든다.
더구나 곱디고운 손자 녀석은 우리에게는 첫 손자이기에 각별한 애정과 의미를 느낀다.
일주일의 닷새를 그 애와 함께 하는 생활을 통해 발달하는 성장과정을 지켜보면서 우리 내외가 우리 아이들에게 미쳐 느껴보지 못했던 진한 동물적 애정을 느끼고 있다. 나의 피를 이어받은 그 아이의 피가 미국의 대지를 뻗어가 할아버지와 손자가 우주 속에서 하나가 되는 사랑을 이루기 때문이다.
요즘 아기들은 모태에서부터 태교를 받고 태어나면서 시청각 교육을 받고 있어 아이들의 지능발달이 예사롭지가 않다. 더운물을 주면 꼭 손가락 끝으로 확인하고는 물을 마시고 제가 좋아하는 비디오를 골라 끼워 정신 없이 화면을 즐기기도 한다.
할미가 기침을 할라치면 (그 애는 우리를 할비, 할미라고 부른다) "물, 물!" 하며 내가 준 컵 물을 할미에게 먹여주고 휴지로 입가를 닦아주기도 한다. 또 어미가 간식을 내놓으면 꼭 할비, 할미 것을 챙겨주니 아비로부터 받지 못했던 효도를 손자로부터 받게 되어 어찌 기분이 좋지 않으리. 그래서 우리는 단순한 베이비시터만이 아니고 조부모이면서 모범을 보일 선생이기도 하다. 매일 함께 생활하면서 알게 모르게 그 아이의 신체, 지능, 정서 발육과 성격 형성에 영향을 줄 것이기 때문이다.
이제 소망이 있다면 우리 내외가 미국 땅에서 새 가문의 뿌리가 되고 아들부부들이 튼튼한 밑 둥지가 되어 거기에 자손들이 줄기를 뻗고 가지에 새 순이 움터 아름다운 꽃을 피워 슬프고 외로운 사람에게 위안을 주고 또 맛있는 과일을 맺어 배곯는 사람의 허기를 채워주거나 큰 그늘을 이루어 노인이나 노숙자들이 쉬고 갈 수 있는 큰 나무가 되었으면 한다.
내 죽으면 육신은 머리를 모국을 향해 땅에 묻히고 내 영혼은 조상신이 되어 내 자손들을 악으로부터 보호해 주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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