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즘 한국 엄마들은 아기가 태어난 후 100일만 지나면 영어를 가르친대요. 이제 막 젖을 뗀 한국의 어린 조카들이 나보다 영어를 더 잘 합디다."
"난 하루 두끼만 먹더라도 한국에서 살고 싶은데 거기 사람들은 미국에 오고 싶어 난리야. 가족 이민이 힘드니까 자식만 혼자 유학 보낸 집안도 꽤 많은 모양이야. 며칠 전에 신문에도 났더라구요."
지난 주말 머리를 깎으러 갔다가 우연히 귀동냥한 한 아주머니의 서울 방문담이다. "전통시절에 한번 나가본 후 이번에 처음 한국을 다녀왔다"는 입심 좋은 아주머니는 "나가고 싶은 사람 죄다 내보내면 대한민국엔 대통령 혼자 남을 것"이라며 사람들을 웃겼다.
대통령을 제외한 대한민국 국민 전체가 정말 미국행 이민보따리를 싸고 싶어하는지를 확인할 길은 없지만 조기유학이 증가한 것은 아주머니 말대로 "신문에 난" 엄연한 사실이었다.
미처 다 읽지 못한 지난 1주일 분의 묵은 신문을 뒤적이다 보니 8일자 한국일보 본국지에 한국정부의 조기유학 전면 자유화방침 발표 이후 해외로 나간 초중고교생이 크게 증가한 것으로 집계됐다는 기사가 실려 있었다. 작년 3,4월 두 달간 조기유학을 떠난 학생은 모두 2,874명으로 99년 전체 초중고 유학생 1,650명의 25%에 달했고 이 가운데 41%인 1,174명이 미국으로 건너갔다는 내용이었다.
자녀들에게 최상의 교육환경을 제공해 주고 싶은 것은 세상 부모들의 공통된 마음이다. 아이들을 보다 좋은 환경에서 공부시키겠다는 부모의 결정을 나무랄 사람은 아무도 없다.
하지만 문제는 어린 자녀들의 적응능력이다.
파종기에 모판에서 논으로 옮겨 심어진 모들이 며칠동안 빌빌댄다는 이야기를 어디선가 읽은 기억이 있다. 환경이 바뀌면 식물조차 적응에 어려움을 겪는다는데 어느 날 갑자기 말 설고 낯 설은 타국 땅에 이식된 미성년자들이 겪어야 할 정서적 혼란과 위축감이야 말해 무엇하겠는가.
그렇다고 이들을 보호해줄 든든한 울타리를 미리 설치해 둔 것도 아니다. 대다수의 조기 유학생들은 현지 친척에게 맡겨지거나 아니면 유학도우미로 따라온 어머니와 생활한다. 아무래도 한국에 비해 상대적으로 취약해진 보호막 속에서 지내는 셈이다.
미국이 자녀교육에 최적의 환경을 지녔다면 미주 동포들은 그야말로 축복 받은 사람들이다. 하지만 미주 한인들의 최대 고민 거리 가운데 하나가 바로 자녀 교육이다.
지난해 대통령 선거전에서 공화당의 조지 W. 부시 후보가 내걸었던 최대공약은 감세였다. 그러나 대통령에 당선된 후 그가 던진 첫 번째 화두는 감세가 아니라 교육개혁이었다. 정국운영의 첫 단추를 제대로 꿰기 위해 범국민적인 지지를 등에 엎을 수 있는 카드를 물색하던 부시가 감세보다 교육개혁에 대한 유권자들의 공감대가 훨씬 크고 넓다는 사실을 읽어냈기 때문이다.
학교는 고도가 아니다. 학교도 엄연히 사회의 한 부분이다. 사회를 관통하는 분위기가 학교를 비껴가기를 바라는 것은 무리다. 한국사회의 고질적 병폐들이 학교에서도 나타나듯, 미국 사회의 질병들 역시 학교 안으로 전염된다. 한국의 교육환경이 한국적 문제에 오염되어 있다면 미국의 교육환경 역시 미국적 병원균에 감염된 상태다. 지난 주 한국에서는 수석을 다투는 여중생의 원조교제가, 미국에서는 고교생의 교내총격사건이 국민들에게 각각 충격을 던져주었다.
부모의 1차적 책임은 자녀들이 사회의 병원균에 감염되지 않게 보호하고 이들에게 올바른 저항력을 길러주는 일이다. 아이들이 LA에 있는지, 서울에 있는지는 그리 중요하지 않다. 정서적으로 예민한 자녀들에게 가족이라는 든든한 울타리를 제공해주고 이들의 가슴속을 사랑이라는 이름의 백신으로 가득 채워주는 것이 우선이다. 교육은 장소의 문제가 아니라 사람의 문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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