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박춘석 작곡가. [한국일보 자료사진]
사랑은 이별도 한 시절의 추억이다. 1964년 샹송 가수 최양숙의 '황혼의 엘레지'가 한 시대의 애창곡으로 사랑을 받았다. 미8군 장교클럽의 무명 피아니스트 박춘석이 미모의 팝송 가수 이해주를 사랑했지만, 이루지 못한 아픔을 서사한 노래다. "마로니에 나뭇잎에 잔별이 지면/ 정열의 불이 타던 첫사랑의 시절..."
이에 앞서 1954년, 박춘석은 '황혼의 엘레지'를 작사, 작곡하고 이해주를 백일희라는 예명으로 레코드 가수로 데뷔시켰다. 불세출의 작곡가 박춘석이 탄생한 순간이었다. 그러나 백일희는 미군 장교와 사랑에 빠지고, 박춘석은 실연의 아픔을 견뎌야 했다. 1년 뒤 1955년, 박춘석은 자신이 노래한 '황혼의 엘레지'의 레코드를 냈다. 그 뒤 백일희의 '황혼의 엘레지' 음반은 찾을 수가 없고 전설로만 남았다.
서글픈 가사와 멜로디를 보면, 박춘석은 백일희의 사랑이 이미 황혼으로 저문 것을 알면서도 미련을 버리지 못하고 마지막 회유와 사랑으로 곡을 썼던 게 아닐까. 그 10년 뒤 샹송 분위기로 편곡을 바꿔 최양숙이 노래했다. 백일희는 미군 장교와 미국으로 떠나고 ’단장의 미아리 고개‘를 노래한 언니 이해연과 가족도 미국 이민을 갔다.
박춘석과 최양숙은 서울음대 기악과와 성악과 출신으로 멜랑콜리한 분위기였다. 패티 김이나 이미자의 신곡을 낼 때면 박춘석은 가수와 같이 필자를 찾아오곤 했다
. 따뜻한 사람이었다. 필자가 만든 일간스포츠 ‘골든디스크상’ 공로상을 수상했다. '가을을 남기고 간 사랑' '초우' '공항의 이별' '흑산도 아가씨' '가슴 아프게' 등 2,700여 곡을 남기고 2010년 80세로 세상을 떴다.
측근이었던 연예계 인사는 "박 선생은 백일희와 결혼까지 생각했다. 허무한 꿈이었다. 그 후로 여자를 멀리하고 밤이면 와인을 마시고 괴로워했다"고 기억했다. 박춘석은 실연의 아픔으로 남 몰래 울고 한 시대를 노래로 승화시킨 한국 가요사의 큰 산맥이다.
요즘 뉴스에는 스토커도, 아파트 밀림의 배관을 타는 사이비 타잔의 사이비 사랑도 등장한다. 사랑마저 완력으로 일그러진 사회의 모습은 우리를 슬프게 한다. 진짜 사랑이라면 실연도 이별도 각각 한 시절의 추억이다.
우리 사회, 정치도 유난히 추웠던 겨울과 이별하고 봄을 기다리는 시기다. 다가올 계절은 우리 사회, 정치도 날 선 고성보다 대화와 타협의 따뜻한 봄이었으면 좋겠다. 꽃보다 아름다운 따뜻한 사회와 정치가 아쉽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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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대남 한국대중문화예술 평론가회 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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