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해가 밝았다. 새마음으로 각오를 다지는 때. 병오년 말처럼 올해는 건강에 붉은 에너지를 쏟아넣고 싶다. 나의 새해 다짐은 밥을 줄이자는 것이다. 밥으로 인한 적신호가 켜졌기 때문이다.
‘밥도둑!’익숙한 말이다. 작년 9월 엘에이 한인축제에서는 ‘밥강도’라는 말도 보았다. 그런데 나는 ‘밥도둑’이라는 문구를 보면, 이젠 마음이 무겁다. 겁이 난다. ‘뭐니 뭐니 해도 밥보가 최고다’라는 말을 건강과 직결시켜 왔다. 어렸을 적에 한 끼라도 굶으면 큰일 나는 줄 알았다. 할머니의 호통- 애정이 듬뿍 담긴 걱정 때문이었다.
그런데 이와는 다른 의견을 들은 적이 있다. 지금은 가물거리지만, 대학 신입생 교양수업 시간에 고 함석헌 선생께서 학교에 오셨던 일이 있다. 선생님은 삐쩍 마르고 허연 수염이 신선 같았다. “어머니는 밥을 고봉으로 수북이 담아주시면서도 더 먹으라고 하셨는데 그 말을 잘 들어서 약하다”고. “밥을 많이 먹지 말라”는 그 말씀은 기억난다. 나는 의아했지만, 그 후로는 잊고 살았다. 그리고 보통 친구 간에는“먹고 죽은 귀신은 때깔도 좋다”며 많이 먹기를 권하기도 한다.
세월이 날라, 이제 병원을 가까이하는 때가 되었다. 몇 년 전, 각종 검사 후 혈액검사 결과가 고혈압이라 했다. 이해할 수 없었다. 술 담배도 하지 않고, 기름진 음식은 멀리했기에 내 식습관에 가책이 없었다. 그런데 원인이 하얀 쌀밥이라 했다. 그러다 올해, 각종 검사 결과 또 다른 병이 생겼다. 위암의 전 단계가 될 수도 있다고 한다. 콜레스테롤은 흰밥을 많이 먹으면 생긴다고 한다.
내가 그토록 굳세게 끌어안은 밥사랑-‘ 밥심으로 산다’라는 말은 바위처럼 내 안에 굳게 자리 잡고 있었다. 특별히 누가 강요한 것도 아닌데, 부지불식간에 보이지 않는 편식의 원인이 되었을까. 딸은 여러 번 말했다.
“엄마가 고혈압이라는 사실은 엄마의 식사에 원인이 있어요. 나도 엄마가 아니라면 이렇게까지 얘기 안 해요.” 하면서 영상을 보내주기도 하고, 볼 때마다 조심스럽게 말해주었다. 나는“알았어. 너는 너대로 해, 나는 나대로 할게.” 하면서도 속으로는 밥을 줄이려고 생각은 했다. 이제는 말을 듣는 처지가 바뀌었다. 저 어렸을 땐 내 말을 안 듣더니 이젠 반대가 되었다.
그런데, 그 결과를 지금 겪으니 밥에 대한 신념의 바위가 깨어지고 있다. 이 고집을 깨트리기까지 십 년도 더 걸렸다. 무식해서 용감하다가 병이 생기니 그제야 어리석은 나를 돌아본다.
생각해보면, 세대마다 밥을 대하는 태도가 다르다. 할머니 세대는 밥을 곧 생명으로 여겼다. 굶주림의 기억 속에서 밥은 사랑이자 보호였다. 그것은 자기 경험을 기반으로 한 인식이다. 그러나 딸 세대는 풍요 속에서 자라 건강을 먼저 생각한다. 흰 밥을 줄이고 채소와 단백질을 챙기며, 몸의 균형을 지키려 한다. 나는 오래된 습관을 붙들고 있었고, 이제야 두 세대의 목소리를 함께 듣는다. 그렇게 말해도 듣지 않는 엄마를 딸은 얼마나 답답했을까. 나의 믿음과 습관의 허망함을 느낀다.
병원에선, ‘저탄고단’을 권한다. 탄수화물은 적게, 단백질을 많이 섭취하라고 한다. 지방도 필요하다. 음식은 내 몸의 상태에 따라 알맞게 섭취해야지, 뜻 없이 기호에 맡길 것은 아니라는 것을 오랜 세월을 통해 배운다. 아무리 밥도둑이 있어도, 도둑은 멀리해야 한다. 이제는 몸의 소리를 듣고자 한다. 더 이상 병이 깊어지기 전에. 내일의 힘찬 맥박을 기대하면서. 그래도 문제는 남는다.
나는 또 무슨 바위를 쌓고 있을까. 나의 다짐은 언제까지 미칠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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홍용희 수필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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