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 미국은 지금 / 김동찬 시민참여센터 대표
2025년 을사년이 저물고 있다. 되돌아보면 올해는 전 인류가 하나의 구조적 전환점을 통과한 해였다. 팬데믹의 잔재 위에서 AI 혁명, 전쟁, 신보호무역주의가 동시에 충돌하며 세계 질서는 근본부터 재편되고 있다. 팬데믹의 종료는 끝이 아니라 새로운 표준의 시작이었다. 원격의료, 재택근무, 비대면 경제는 임시 처방이 아니라 디지털 문명의 기본 방식이 되었고, 각국은 식량·에너지·기술의 자급체계를 국가 전략의 핵심으로 끌어올렸다.
기술 패권 경쟁이 국가의 명운을 가르는 시대, AI 반도체와 데이터센터, 전력망은 이제 군사력에 준하는 전략자산이 되었다.
문제는 이런 문명사적 변화의 속도를 인류의 인식과 사회 시스템이 따라가지 못하고 있다는 데 있다. 여전히 냉전적 사고에 머문 채, 불확실한 일상 속에서 방향을 잃고 헤매고 있다.
이 거대한 구조 변화의 파도는 미주 한인사회도 예외 없이 덮치고 있다. 1970~80년대 이민 세대가 구축한 청과업, 수산업, 잡화업, 네일업 중심의 1세대 커뮤니티 구조는 더 이상 지속 가능하지 않다. 팬데믹 이후 노년층의 급속한 은퇴, 새로운 이민 세대의 부재 속에서 기존 협회들은 빠르게 기능을 상실하고 있다. 이는 단순한 경제 영역의 위축이 아니다. 커뮤니티 생태계 전체가 무너지고 있는 것이다. 과거 협회들이 경제적 기반이자 사회·문화적 네트워크의 중심이었다면, 지금은 그 토대 자체가 사라지고 있다.
이 흐름이 계속된다면 미주 한인사회는 ‘커뮤니티’라는 공동체의 최소 단위조차 유지하기 어려운 상황에 직면하게 된다. 해결의 출발점은 현실 인식이다. 1세대 이민자들이 만들어온 친목 도모형 협회 커뮤니티는 이미 사명을 다했다. 이제 필요한 것은 2세대가 참여하는 전혀 다른 형태의 공동체다. 지속성과 일상성을 갖춘 프로그램, 복지·교육·법률·디지털·창업·문화 전략이 결합된 21세기형 커뮤니티 시스템으로의 전환이 시급하다.
특히 미국의 복지 인프라를 이해하고 활용하는 능력이 절실하다. 노인과 저소득층, 이민 2·3세를 위한 교육과 건강, 법률·기술 지원은 선언이 아니라 실제 설계와 운영의 문제다. 이 과정의 중심에는 공공 자원뿐 아니라 한인 자본이 반드시 들어와야 한다. 커뮤니티의 재편과 성장은 선의만으로 이뤄지지 않는다. 전략적 자본 투자가 있어야 한다.
미국의 대자본가들이 수많은 재단과 연구소를 세워 사회를 유지·발전시켜온 것은 우연이 아니다. 이들은 자본이 사회의 시스템을 떠받쳐야 자본주의 자체가 지속 가능하다는 사실을 알고 있었다. 돈을 버는 것에서 멈추지 않고, 사회의 구조를 설계하는 데 자본을 사용해왔다.
미주 한인사회에도 같은 원리가 적용돼야 한다. 비즈니스 성공자, 투자자, 신세대 기업가 등 자본을 축적한 이들이 이제는 나서야 한다. 커뮤니티의 미래를 고민하고 문화·교육·복지·디지털 생태계에 자본을 투입해야 한다. 한류 콘텐츠로 넷플릭스와 구글 같은 글로벌 기업들이 막대한 수익을 올리는 동안, 정작 미주 한인사회는 그 중심에서 실질적 이익을 거의 얻지 못하고 있다. 이제는 한류의 소비자에 머물 것이 아니라 생산자로, 커뮤니티의 방관자가 아니라 재건의 주체로 나서야 할 때다.
한인 커뮤니티의 다음 100년은 누가 책임질 것인가. 과거의 방식으로는 더 이상 버틸 수 없다. 지금 필요한 것은 단순한 돈이 아니라 비전 있는 돈, 책임 있는 자본이다. 커뮤니티의 생존은 우연의 산물이 아니다. 철저히 전략의 문제다. 2025년이 가기 전에, 자본을 축적한 한인 자산가들이 커뮤니티의 현실을 직시하고 무엇을, 어떻게 할 것인지에 대한 전략적 고민과 책임 있는 행동에 나서야 한다. 그것이 미주 한인사회의 미래를 결정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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