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을이 짙어가던 시월 어느 날, 본당 신부님의 방문. 식어 가는 차를 앞에 놓고 사는 이야기 두런두런 나누어갔다. 이어 나에게 ‘사목회장’을 맡아달란다. 너무 당황스럽기도 하고, 준비 돼 있지 않아, 생각 할 시간도 필요하고 기도도 해 보겠다는 말씀만 드렸다. 겨울의 초입에서, “소명”으로 알아 듣고 무겁고 어려운 자리를 맡아보겠다는 답을 드렸다.
퇴직을 하고, 한국을 오가며 엄마를 살피던 일이 끝났고, 읽고 쓰는 일을 주로 하며 사는 요즈음. 삶의 게으름이 주님 눈에 띄었던 것일까? 나의 성소를 찾아 열심히 하라는 채찍인 것 같았다. ‘내가 사막 가운데 있을 때…… 광야에서 길을 잃어도…… 평화와 사랑 부어주시는 주님……’ 그렇게 이어지는 성가가 갑자기 떠올랐다. 또 하나, 얼마 전 전교 주일의 강론에서, 2000년 인류의 역사 안에서, 교회는 잘못도 있었고, 박해도 심하게 받았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오늘 이 시간 우리가 이 작은 공동체를 이루어 함께 모여 기도하고 미사를 드리고 말씀을 나눌 수 있다는 것은, 말 그대로 주님의 사랑과 은총이 아니고는 설명이 되지 않는다는. 전교는 복음, 신앙, 삶의 모든 모습에서 베어 나야 하는 것이고, 우리들 하나 하나는 삶의 모습으로 증거해야 한다는.
과연 나는 오늘의 모습이 누구에게 귀감이 될 수 있을까? 더구나 종교를 갖은 신앙인으로 누구에겐가 다가 갈 수 있을까? 절대 그렇지 못한 죄 많은 미물이지만, 부르심을 받았다면 그래야 할 이유가 있다고 믿는다. 어쩌면 ‘첫번째 여성 사목회장’이라는 이 자리는 내가 지고 가야하는 나의 십자가 일 수 도 있다. 처음 가보는 길에 ‘예’라고 답을 했지만 가다보면 어깨가 아플 수도 있고, 등이 휠 수도 있으며, 걸려 넘어 질수도 있다. 그렇다고 하더라도 베로니카가 닦아 주었던 주님의 피땀을 묵상하며 한걸음씩 앞으로 나가 보려고 한다.
대림절 주간이다. 가장 짙은 색의 보라색 초 하나가 밝혀졌다. 다음 주에는 2번째의 촛불이 켜지고 점점 환해 지며 주님 오신 그날, 성탄절을 맞는다.
교회력으로는 전례의 새해 첫날이기도 하다. 그 첫날에, 가장 비천한 곳에서 가장 낮은 모습으로 오신 주님. 그분의 모습을 배우며 감사히 이 자리를 받는다. ‘최선을 다해 보겠습니다’라는 약속만 드린다. 나의 일, 나의 십자가, 나의 가장 낮은 자리만을 놓지 않아야겠다. 먼저 다가가 손잡아 드리고, 이야기 들어 드리고, 따뜻한 미소와 작은 마음을 보탤 것이다. 진실로 회개하고, 일상을 고백하며, 먼저 다가가는 나의 모습이 되자, 는 요즈음의 매일 새벽기도. 오래 오래 같은 마음이고 싶다.
새로운 시작, 그분의 부르심에 감사하고 행복하며 즐겁게 해 보려고 한다. 가슴은 뜨겁다. 어둠 속에서 하나씩 촛불을 밝히는 빛은 옆으로, 이웃으로, 사랑이 되어 스며들고 ‘온 마음 다해…’ 기도 같은 성가처럼, 뜨거운 가슴 안으로 별들은 환한 빛이 되어 쏟아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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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지은 수필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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