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국 ‘판다 외교’는 역사가 꽤 깊다. ‘7세기 당나라 여제 무측천이 일본에 백곰(판다 혹은 판다와 유사한 희귀동물로 추정)을 보냈다’는 게 첫 사례로 꼽힌다. 현대로 범위를 좁히면 1941년 장제스 총통 아내 쑹메이링이 중일전쟁 지원에 대한 감사 표시로 미국에 판다 두 마리를 보낸 것이 효시다. 이후 중국은 마오쩌둥 시대를 맞아 본격적으로 판다 외교를 펼쳤다. 무상 증여 방식을 유지한 1983년까지 전 세계로 보내진 중국 판다는 23마리에 달했다.
■이들 중 1972년 리처드 닉슨 미 대통령 방중 후 워싱턴으로 간 판다 링링과 싱싱은 미중 데탕트에 큰 공을 세웠다. 그해 중국 판다를 보기 위해 스미스소니언 동물원을 찾은 관람객은 수백만 명에 달했다. BBC는 “판다 한 쌍이 대사 수십 명보다 낫다”고 보도했을 정도다. 홍콩 언론들은 “이 정도면 비용 대비 최고 선전 효과”라는 중국 내부 평가를 전하기도 했다. 중국과의 관계개선에 냉랭했던 미국인 마음을 돌리는 데 판다 외교가 한몫을 한 셈이다.
■미시시피 대학이 내놓은 ‘판다 외교: 중 소프트 파워가 미친 영향(2019)’ 논문에 따르면 판다는 중국 정부 이미지를 완화하고 ‘외교적 완충재’ 역할을 하는 효과가 탁월하다. 이는 1972년 중국과 국교 정상화를 이룬 일본에서도 검증됐다. 당시 우에노 동물원은 중국이 보낸 ‘캉캉’과 ‘란란’을 보러 오는 시민들로 인산인해를 이뤘는데, ‘30초 관람제’ 시행이 검토됐다. 이후 일본인들은 센카쿠 열도를 둘러싼 중일 갈등 국면에도 판다를 보내준 중국에 고마워했다고 한다.
■54년간 이어져온 일본행 중국 판다 행렬이 내년 2월 끊긴다고 한다. 다카이치 사나에 일본 총리가 대만 유사시 개입을 시사한 후 양국 대립이 극단으로 치닫는 가운데, 우에노 동물원 중국 판다 한 쌍의 임대 계약 연장이 결렬되면서다. 판다 외교마저 멈춰 선 중일 관계가 심상치 않다. 이대로라면 동북아 안보균형마저 위태롭다. 일본은 방위비를 부풀릴 명분을 쌓았고, 중국은 서해 압박 정도를 더할 분위기를 얻었다. 이웃 국가들 간 신경전으로만 볼 일이 아니다.
<양홍주 / 한국일보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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