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2월, 시애틀의 겨울밤, 구름이 걷히면 북두칠성이 가장 먼저 눈에 들어온다. 카시오페이아가 ‘W’자 날개를 펴고, 페가수스의 네 별이 사각형을 이루며 서쪽 하늘로 기운다. 바람이 잔잔한 날엔 안드로메다자리의 옅은 빛마저 희미하게 떠올라, 먼 우주의 숨결이 이 도시에 닿는 듯하다.
지금 내가 올려다보는 이 별들은 600년 전, 한양의 밤하늘에서도 환히 빛나고 있었을 것이다. 그 때 조선의 천문학자들은 이 별빛 아래에서 하늘의 움직임을 헤아리며 시간을 계산했다. 그 결과가 바로 『칠정산(七政算)』이다.
1442년, 세종은 “하늘의 길을 조선의 하늘로 바꾸라”고 명했다. 이전까지 조선은 동아시아 역법(曆法)에 의존해 날짜와 절기를 계산했다. 그러다보니 위도와 경도가 다른 한양에서는, 일출과 일몰, 절기의 시점이 정확히 맞지를 않았다. 농사력과 의례력이 어긋나 나라의 행정과 백성의 생활이 혼란스러웠다. 세종은 그 차이를 바로잡고자 직접 천문 관측을 주재했고, 정흠지·정초·이순지 같은 학자들에게 계산법을 맡겼다. 그렇게 만들어진 책이 『칠정산내편』과 『칠정산외편』이다.
내편은 원나라의 수시력을 바탕으로, 한양의 하늘 위치에 맞게 보정한 역법서였다. 절기와 해·달의 운행, 일출·일몰 시각이 정밀하게 계산되어 있었다. 반면 외편은 이슬람에서 들어온 회회력(回回曆), 즉 아라비아 역법을 참고했다. 일식·월식의 예보나 행성의 위치 계산을 위해 삼각법과 고급 산술이 도입되었다. 세종 시대의 학자들은 이렇게 서로 다른 문명의 계산법을 받아들이고, 조선의 관측값으로 다시 조정했다. 말하자면 『칠정산』은 ‘하늘의 국제공용어’를 조선어로 번역한 책이었다.
이 책의 가장 위대한 점은, 단지 수학적 정밀함에 있지 않다. 그것은 ‘시간을 다시 정의한 선언’이었다. 한양을 기준으로 한 절기표와 일출입 시각은 농사의 기준이 되었고, 왕실 의례의 표준이 되었으며, 더 나아가 조선의 과학 행정 시스템의 근간이 되었다. 『칠정산』은 단순한 천문서가 아니라, 백성의 하루와 국가의 시간을 함께 설계한 ‘시간의 규범’이었다.
오늘날 우리는 휴대폰의 달력에 의존해 아무 의심 없이 날짜를 읽는다. 그러나 15세기의 하늘 아래에서, 시간을 한 치의 오차 없이 계산하기 위해 별빛을 읽던 사람들의 노고를 생각하면, ‘하루’라는 개념조차 얼마나 인문학적인 결과물인가를 새삼 느끼게 된다.
시애틀의 밤하늘을 올려다보며, 나는 다시금 그들의 눈을 떠올린다. 세종과 그의 학자들이 한양의 하늘을 바라보던 그 순간, 그들에게 천체는 단순한 별자리가 아니었다. 그것은 나라의 질서이자, 백성의 삶을 지탱하는 ‘빛의 계산서’였다. 그들의 하늘 아래에서 계산된 시간은 오늘 우리의 시계 속에도 여전히 흐르고 있다.
그리고 문득 깨닫는다. 시간은 단순히 흐르는 것이 아니라, 인간이 측정하고 해석하며 새긴 기억의 흔적이라는 것을.
오늘의 과학이 다시 인공지능과 우주탐사로 하늘을 향해 나아가는 지금도 그들의 시대정신은 여전히 유효하다. 지식의 국경을 넘어, 관찰과 사유를 결합해 ‘조선의 우주’를 새로 계산했던 그들의 태도, 그것이야말로 시대를 초월한 진정한 르네상스기를 만들었다. 하늘을 계산한 사람들의 시선이 머물렀던 자리, 그곳에 우리가 서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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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미선 서북미문인협회 회장시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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