추수감사절 전날 워싱턴 D.C.에서 터진 총성은 단순한 한 아프간 이민자의 범죄가 아니었다.
CIA에 협조했던 라마눌라 라칸왈이 워싱턴에서 주방위군을 공격한 사건은, 미국이 수십 년간 유지해온 이민 및 안보 정책의 근간에 균열을 냈다는 상징성을 갖는다. 이 사건은 즉각적으로 트럼프 대통령의 모든 이민 심사 중단 및 재검토 명령, 그리고 우려 국가 출신 망명자 및 영주권자에 대한 전면 재조사 지시를 불러왔다.
안 그래도 시민권자 배우자까지 체포되는 등 반이민 정책의 그림자가 짙어지던 상황에서, 라칸왈의 총성은 미국의 반이민 쇄국 정책에 쐐기를 박는 역사적 방아쇠가 될 수 있다는 우려를 낳는다. 문제는 이러한 폐쇄적인 전환이 곧 과거 제국들의 몰락 경로였다는 점이다.
역사는 반복된다. 성장하던 로마, 당나라, 그리고 초기 미국은 개방과 포용을 통해 외부의 인재와 자원을 적극적으로 수혈했다. 반면, 쇠퇴하던 제국들은 국경을 닫고 외부인을 내부 문제의 희생양으로 삼으며 활력을 잃었다. 지금 미국은 과거 제국들이 빠졌던 쇠퇴의 늪 앞에서 중대한 선택을 강요받고 있다.
쇠퇴하는 국가들이 이민을 위협으로 보며 국가 활력을 잃었던 것처럼, 미국이 합리적인 시스템 없이 감정적으로 이민의 빗장을 걸어 잠그는 행위는 인재 풀의 고갈을 초래할 것이다.
과거 로마가 외부 보조병과 기술자를 수용하며 제국을 확장했듯, 미국은 고학력 인재와 새로운 노동력을 유치하는 혁신적인 이민 정책으로 전환해야 한다. 다양성은 미국의 약점이 아니라, 세계를 선도해온 궁극적인 무기였다.
몰락기의 제국들은 재정 파탄과 보호무역이라는 늪에 빠졌다. 단기적인 포퓰리즘을 위한 무분별한 재정 지출을 멈추고 건전한 재정 기강을 확립하는 것이 국가 경쟁력 회복의 첫걸음이다. 고립주의가 아닌 전략적이고 공정한 무역을 통해 세계 시장 리더십을 회복하고, 자유 경쟁 환경을 복원하는 것이 시장 활력을 되찾는 핵심이다.
성장기의 강대국은 세계 질서를 구축하고 동맹과 함께 영향력을 확장하는 확장적 리더십을 발휘했다. 방어적인 성벽 뒤로 숨거나, 동맹을 불신하는 "미국 우선주의"는 국제적 공백을 만들고 경쟁국의 위협만 키울 뿐이다.
미국은 가치와 이념을 공유하는 동맹들을 중심으로 새로운 세계 질서를 재구축해야 한다. 진정한 강대국은 군사력 과시가 아닌, 외교와 소프트 파워를 통해 리더십을 발휘한다.
쇠퇴하는 국가들은 주류 사상만을 강요하고 지적 자유를 억압하여 사회적 활력과 창의성을 스스로 질식시켰다. 미국이 극단적인 문화 전쟁에 매몰되어 지적 다양성과 객관적인 진실 추구를 훼손하는 행위를 경계해야 하는 이유다. 자유로운 학문 활동을 보장하고 기술 혁신을 지원하는 개방적이고 역동적인 사상 시장이야말로 미국을 재도약시키는 궁극적인 동력이다.
미국이 21세기의 새로운 길로 나아가기 위해서는 과거 제국의 폐쇄성, 경직성, 고립주의라는 덫을 피하고, 개방성, 유연성, 확장적 리더십이라는 성장 엔진을 재가동해야 한다.
라칸왈의 총성이 합법적인 안보 재검토를 촉발하는 계기가 될 수는 있어도, 무차별적인 쇄국으로 이어져서는 안 된다. 이민은 문을 닫는 대상이 아닌 받아들여야 할 자원이며, 동맹은 거래 대상이 아닌 협력의 축이다.
미국의 위대함은 벽을 쌓는 데 있지 않다. 오히려 어려움 속에서도 문을 열고, 새로운 것을 포용하며, 세상의 리더십을 기꺼이 짊어졌던 용기에 있었다는 사실을 잊지 말아야 한다. 지금이야말로 그 용기를 다시 꺼내 들 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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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동찬/시민참여센터 대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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