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을이 주는 첫번째 이미지는 풍요로움이다. 한 여름 땀흘려 일한 댓가로 오곡백과가 무르익고 이를 거둬들여 풍성한 식사를 할 수 있는 계절이기 때문이다. 동양의 추석부터 서양의 추수감사절까지 어디나 이를 축하하는 행사가 열린다. ‘더도 덜도 말고 한가위만 같아라’는 그래서 나온 말이다.
한자로 가을을 뜻하는 ‘추’는 벼 화자와 불 화자의 합성으로 돼 있다. 불을 피워 햅쌀로 밥을 해 먹는 것이 가을의 가장 중요한 일임을 알 수 있다. 우리말의 ‘가을’도 어원을 따지면 ‘거둬들인다’에서 왔고 영어를 포함, 게르만 언어권에서는 추수를 뜻하는 ‘harvest’가 가을이라는 뜻으로 쓰여 왔다. 상업 혁명과 산업 혁명이 일찍 진행돼 농사의 중요성이 줄어든 영국은 이것이 16세기부터 ‘fall’ 또는 ‘autumn’으로 대치됐지만 독일에서는 아직도 가을을 ‘Herbst’라고 부른다.
그러나 가을에는 이런 풍요로운 이미지만 있는 것은 아니다. ‘fall’이라는 단어가 말해주듯 가을은 또한 추락의 계절이다. 가장 눈에 뜨이는 추락은 한여름 풍성하던 나뭇잎이 단풍으로 변하다 결국은 낙엽으로 떨어지는 일이다. 낙엽의 추락은 한 해가 지나고 끝이 다가왔음을 알리는 선명한 신호다. 영어를 포함, 라틴어가 널리 쓰이는 곳에서 가을을 뜻하는 ‘autumn’은 라틴족의 스승인 에트루스칸족 언어의 ‘autu’에서 왔는데 이는 ‘한해가 지났다’라는 뜻을 담고 있다고 한다.
이런 가을의 양면성을 잘 표현하고 있는 대표적인 시로 라이나 마리아 릴케의 ‘가을날’(Herbsttag)을 빼놓을 수 없다. 그 전문을 옮겨본다.
‘주여, 때가 되었습니다. 여름은 정녕 위대했습니다. 당신의 그림자를 해시계 위에 드리우시고 들판엔 바람을 풀어 놓으소서./ 마지막 과일에 익도록 명하시고 그들에게 이틀만 더 남녘의 날들을 주소서. 그들을 완성케 하시고 마지막 단맛이 무거운 포도송이에 스미게 하소서./ 지금 집이 없는 사람은 앞으로도 집을 짓지 않을 것입니다. 지금 외로운 사람은 앞으로도 오랫동안 그럴 것이고, 깨어나 읽고 긴 편지를 쓸 것이며 낙엽이 휘날리는 가로수길을 이리저리 불안하게 방황할 것입니다.’
첫번째와 두번째 단락만 보면 가을은 그야말로 평화로운 풍요의 계절이다. 그림자의 길이는 길어지고 들판엔 선선한 바람이 불며 과수원에는 포도가 익어간다. 그러나 마지막 세번째 단락에 오면 분위기는 갑자기 싸늘하게 바뀐다. 집도 절도 없는 사람이 낙엽 쌓인 길거리를 혼자 불안하게 이리저리 방황하는 모습은 끝이 가까왔음을 느끼는 인간의 절망적인 모습을 연상시킨다.
여기서 끝은 단순히 계절의 종료가 아니라 인생 전체를 상징하는 것임은 물론이다. 가을이 끝나면 차갑고 하얀 눈으로 뒤덮인 겨울이 오듯 인간의 삶도 때가 되면 죽음을 피할 수 없다. 다가오는 죽음을 생각할 때 인간은 과연 내가 제대로 살아왔는지, 앞으로 어떻게 살아야 하는지 불안을 느낄 수 밖에 없다.
깨어나 ‘불안하게’(unruhig) 길거리를 헤매는 이 시의 주인공을 생각할 때 떠오르는 또 하나의 인물이 있다. 릴케와 같이 지금 체코의 프라하에서 태어나 19세기 말에서 20세기 초까지 같은 시대를 살다 간 프란츠 카프카의 대표작 ‘변신’의 주인공 그레고르 잠자다.
이 소설은 잠자가 어느날 아침 갑자기 거대한 벌레로 변해 그동안 자신이 뼈빠지게 일하며 부양해왔던 가족들로부터 찬밥 취급을 당하다 아버지가 던진 사과에 맞아 부상을 당하고 결국 굶어죽은 후 쓰레기통에 버려지는 이야기다. 이 작품은 그가 죽자 가족들은 큰 골칫거리가 해결됐다며 피크닉을 떠나는 것으로 끝난다.
이 소설은 ‘그레고르 잠자는 어느날 아침 불안한 꿈에서 깨어나 자기 침대에서 자신이 한마리의 거대한 벌레로 변해 있는 것을 발견했다’로 시작되는데 이는 독일 문학사상 가장 유명한 첫문장의 하나다. 여기서 잠자가 느낀 불안(unruhigen)은 릴케의 불안과 같은 단어다.
잠자의 불안은 어떤 불안이었을까. 그것은 아마도 자신의 삶이 벌레의 삶과 별 차이가 없지않을까 하는 불안이 아니었을까. 벌레도 아침에 일어나 먹이를 구하러 열심히 돌아다니고 고단하면 자고 새날이 오면 또 돌아다니기를 반복한다. 카프카는 독자에게 너의 삶은 벌레의 삶과 얼마나 다른가를 묻고 있는 것이다.
아무리 대단한 인간도, 거대한 부와 권력도, 부강한 나라도 때가 되면 반드시 소멸한다. 그 후에 남는 것은 그에 대한 평가뿐이다. 평범한 사람들은 주변 사람들의 평판이, 중요한 인물과 국가는 역사적 평가가 그것이다.
가을은 풍성함과 함께 세상에 존재하는 것들의 유한함과 덧없음을 가르치는 교육의 시간이다. 나뒹구는 낙엽들은 겨울이 가까이 오고 있음을 속삭이며 너는 지금 과연 값있는 삶을 살고 있는가를 모두에게 묻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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민경훈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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