군 복무 시절에 내가 소속된 부대가 최전방인 지오피(GOP) 지역을 담당했다. 나는 연대 인사과에 근무하여 연대 내에서는 철책선에서 가장 멀리 떨어진 곳에서 행정업무를 수행했다.
일과를 마치고 저녁식사 후에 간혹 군종과에 들러 군종요원의 인도로 성경 구절을 공부하고 찬송가를 함께 부르기도 했다. 이때 배운 찬송가가 ‘주 안에 있는 나에게’ ‘죄짐 맡은 우리 구주’ ‘주의 친절한 팔에 안기세’ ‘저 높은 곳을 향하여’ ‘빈 들에 마른 풀같이’ ‘죄에서 자유를 얻게 함은’ 등등이다.
찬송을 부르면 마음을 열어 성경 말씀을 받아들이고 믿음이 깊어지며 마음이 평온해졌다. 어쩌다 외출할 때는 민간인 출입 통제선 북쪽에 위치한 마을 옆길을 지나가게 되는데 작은 교회에서 부르는 여성들의 찬송가가 천사의 소리처럼 아름답게 들렸다. 이때 받은 찬송가의 좋은 이미지가 먼 훗날 내가 찬양대에 가입하는데 영향을 끼쳤다.
제대 후에 교회에 다녔고 결혼하기 전에 아내를 내가 다니는 교회로 인도하여 함께 다녔다. 미국에 온 후에는 온 가족이 모두 교회에 열심히 다녔다. 친교부장으로 3년 교회 봉사를 한 후에 봉사부장으로 바쁜 가운데도 1부 호산나 찬양대에 가입했다.
찬양대원으로 찬양곡을 자주 부르다보니 소리는 들리지 않지만 평소에도 찬송가를 부르는 것과 같이 느낄 때가 많아 은혜가 된다.
감리교의 창시자인 존 웨슬리(John Wesley)는 “만개의 입이 내게 있어도 내 위대한 구세주를 찬양하기에 넉넉지 못하리라. 찬송은 기도에 버금가는 하늘을 향해 나아가는 전위대다.” 라고 했다. 강산이 두 번이나 바뀔 만한 세월 동안 찬양대원으로 봉사하는 것도 보기만큼 쉬운 일은 아니다.
처음 얼마 동안은 연습시간에 지휘자의 지시를 잘못 듣고 나만 악보의 다른 부분을 노래하기도 하고, 소프라노 파트가 불러야 하는 부분을 나도 불러 고참 대원의 지적을 당하기도 했다.
요즈음도 예배 전 찬양 연습과 예배 후 찬양 연습에 참여하여 정성을 다해 연습한다. 개인적으로 토요일 야간 모임에 참석해서도 주일 새벽에 일어나 찬양 연습하러 가야함으로 일찍 자리를 뜨곤 했다. 주일 새벽에는 찬양대 연습시간에 늦지 않게 가야한다는 긴장감 때문인지 너무 일찍 일어난 날이 많다.
다음은 ‘찬양대원’ 이라는 제목의 나의 시이다.
주일마다/동이 트기 전에 일어나/새벽을 헤치며 교회에 가네//찬양대실에서 연습하여/예배 때 부를 곡을 보니/제대로 부를지 자신이 없네//화음을 맞추어/열심으로 연습하겠으니/예배 찬양할 때/부르는 사람이나 듣는 사람이 모두/감동되게 해 주십사고 기도하네//지휘자의 열성적인 가르침에 따라/연습에 몰두하니/곡을 익혀 부를 수 있을 것 같네//예배당으로 자리를 옮겨/시작 전까지/소리내지 않고 마음 속으로/오늘의 찬양곡을 불러보네//예배가 시작되고/찬양대 일원으로 단 위에 올라/찬양곡을 정성을 다 해 부르네//대원들과 함께 나의 실력 이상으로/찬송을 부르게 하신 은혜에/감사하며 기뻐하네//겸손한 마음으로/하나님을 신뢰하고 예배 드리니/내 영혼에 평화가 가득하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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윤관호/시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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