집집 마다 자개제품 하나 쯤 없는 집이 없는 때가 있었다. 벽면 한쪽을 다 채우는 대형 장농이 있는가 하면 중간 사이즈 반닫이나 크고 작은 보석함, 어느 하나라도 없는 사람이 없을 정도로 자개공예품은 우리 생활에 아주 친숙한 가구였고 장식품이었다. 그런 자개공예품이 다른 말로 나전칠기 공예품이다.
한국문화원에서 서울공예박물관과 협력하여 ‘나전장의 도안실’이라는 주제로 지난 8월 21일 부터 10월 10일 까지 전시회를 한다. 고려부터 천년을 넘게 이어온 전통 공예인 나전칠기 공예의 역사를 깨닫는 좋은 기회다. 그저 가구에 자개로 문양을 입히는 공예 정도로만 알고 지냈던 무지함이 부끄러우면서도, 우리 고유의 귀한 유산을 내가 찾기라도 한 듯 뿌듯하기도 했다.
유투브를 보며 새로운 세계를 본다. 하나의 작품을 만들기 위해 먼저 도안을 그리고 종잇장 같이 얇게 만든 전복껍데기를 절삭이라는 끊음질 기법으로 머리카락 굵기로 자른다. 하나하나 도안 대로 자르고 이어가며 붙인다. 정교하고 화려한 문양을 완성해 가는 그 공정과정은 아무나 할 수 있는 일은 아니다. 조개 껍질을 붙인 뒤에도 몇 차례의 옻칠이라는 코팅과 샌딩을 하고 마무리 하기 까지, 작은 것들은 보통 2-3개월 씩, 어떤 작품은 2-3년 씩 걸리는 것도 있다. 우리는 그들을 장인이라 부른다.
빌 게이츠와 나전칠기에 관한 이야기도 감동적이다. 호텔에 진열된 나전칠기를 보면서 시시각각 변화하는 색깔과 고요하게 스며드는 빛, 그러면서도 화려한 문양과 디자인. 그는 반했고 진열된 4 작품을 모두 샀다. 그리고 작가 김영관 명인에게 부탁하여 자사 비디오 게임기인 X Box의 커버를 부탁했다. 무려 100개나. 스티브 쟙스에게 연락하고 아이폰 케이스를 주문한다. (헤이 스티브, 내가 코리아에서 기 막힌 걸 찾았어! 했겠지...)
BMW 코리아는 차 인테리어에 자개 장식을 하며 시리즈로 선보이기도 했고, 바티칸 교황청의 페르난도 필로니 추기경은 한국천주교교회에서 기증받은 나전칠기 작품을 한국에서 온 보물이라며 교황청 우르바노 신학원에 설치했다.
모네를 빛으로 그리는 화가라면 나전칠기 공예가들은 빛으로 새기는 장인들이라 한다. 아이디어와 기술로만 되는 것이 아니라 전복껍데기와 씨름하며 갈고 닦고 자르고 붙이고 또 갈고 칠을 입히며 고된 노동의 시간을 견뎌야 하는 일인 데다, 정교함과 우아함과 예술성을 두루 갖춰야 하는 작업이기에 아무나 다가서기는 힘든 예술이다. 그들은 시간을 재촉하지 않고 시간과 함께 묵묵히 땀 흘리고 있다.
일본 문화재 영빈관인 메구로 기조앤엔 옻칠 장인 전용복씨가 오래된 옻칠을 복원하고 있다. 장소는 일본이지만 70% 이상이 우리가 만든 것이란다. 이번 문화원 전시장에 백제 왕실 베개 작품이 있는데 진품은 일본에 있다고. 생각이 많아지고 깊어지며 울화가 치민다. 어디 이 베개 하나 뿐이랴. 수 많은 우리의 문화재들이 그곳에 귀양 가 있다. 중국, 일본, 한국에만 있는 나전칠기 공예는 같은 듯 다르지만 팔이 안으로 굽는다고 우리 것이 가장 훌륭한 것 같다.
작업의 가장 기본이 되고 기초가 되는 도안들을 작품과 함께 전시하며 완성된 작품을 대할 수 있는 이런 귀한 전시회를 주관한 문화원에 감사드리며 K-Art의 지평이 좍 펼쳐지는 모습을 그려보는 행복한 순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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로라 김 서예가·시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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