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널드 트럼프 대통령 취임 당시, 미국은 여러 측면에서 세계에서 가장 강력한 주요 경제국이었다. 성장은 견실했고, 실업률은 역대 최저수준 바로 위에 머물렀으며, 인플레이션은 관리 가능한 수준이었고, 경제의 묘약으로 통하는 생산성은 크게 향상됐다. 트럼프는 이렇듯 잘 나가던 경제를 대대적인 관세 인상으로 뒤집어놓았다. 과거에도 이런 사례가 있었을까? 물론 지금처럼 자멸적인 사례는 없었지만 스무트-홀리 관세도 10년간의 고성장 끝에 부과됐다는 공통점을 지닌다. 스무트-홀리 관세에 관한 이야기는 오늘날의 상황과 놀라울만큼 유사하다는 점에서 되새겨볼만한 가치가 있다.
우리는 1920년대를 ‘광란의 20년대’로 기억하는데 이는 경제적으로 딱 들어맞는 적절한 용어다. 1920년대의 10년 동안 미국 경제의 연평균 성장률은 4%를 상회했고 실업률은 대체로 낮은 수준에 머물렀다. 이 시기는 자동차, 항공기, 전화, 라디오와 영화의 대량생산이 가능해진 획기적인 개혁의 시대로 정의된다. 텔레비전이 등장한 것도 이때였고 많은 사람들이 지금까지 나온 물건 중 가장 유용한 것으로 간주하는 밴드-에이드 등 숫한 일용품들이 발명됐다. 헨리 포드는 이후 수 십년간 현대 제조업을 규정한 대량생산 시스템을 완성시켰다. 1990년대와 2000년대가 새로운 경제를 창조한 시대로 칭송받았듯이 1920년대에도 유사한 분위기가 감돌았다.
그러나 그 10년 동안에 또 다른 이야기가 있었다. 미국 핵심 산업이 동공화됐고, 일자리가 외국으로 이전됐으며, 미국의 영혼이 빠져나갔다. 미국 경제의 핵심은 19세기말까지 노동력의 대다수가 종사하는 농업이었다. 1900년까지만 해도 미국 전체 노동인구의 40%가 농업부문에서 일했다. 이 나라는 자작농으로 정의됐다. 워싱턴, 애덤스, 제퍼슨 등 미국의 초창기 대통령들도 농장을 소유하고 운영했다. 그러나 제조업의 부상이 경제지형을 바꾸어놓았다. 1920년에 이르자 인구의 절반 이상이 도시로 이주했고 농업 종사자의 비중은 26%로 거의 반토막이 났다. 농업에 바탕을 둔 기존의 생활방식은 위험에 처했다.
미국 최초의 거대한 포퓰리스트 운동은 농업이 쇠퇴한데 대한 반응으로 19세기 말에 일어났다. 민주당은 일시적으로 대중주의에 사로잡혔고, 불같은 포퓰리스트 웅변가였던 윌리엄 제닝스 브라이언은 세 번이나 민주당 대통령 후보로 지명됐다. 1920년대에 이르러 포퓰리스트 운동은 약화되었지만 민주당과 공화당 모두에게 부분적인 영향을 끼쳤다. 이어 1920년대에 농업이 심각한 타격을 입으면서 이 운동은 다시 기세를 올렸다. (미국의 농업은 1차세계대전의 전화에 휘말린 유럽에 먹거리를 제공하면서 호황을 누렸으나 종전후 유럽이 작물 생산을 재개하자 곡물수요 급감으로 타격을 입었다.)
당시 공화당 기득권층은 농업에 혜택을 주는 보조금과 가격 지원 법안에 반대했다. 캐빈 쿨리지는 1920년대 대통령 재임시절 농가지원 법안에 거부권을 행사했다. 그러나 1929년의 주식시장 폭락과 경기둔화의 여파 속에서 농업 지역 출신 공화당 의원들은 농부들이 정부지원을 절실히 필요로 한다는 입장을 고수했다.
이들은 미국의 산업을 보호하길 원하는 의원들과 연합해 농산물과 공산품을 망라한 다양한 상품의 관세를 대폭 인상하는 이른바 ‘강력하고 아름다운 법안’을 제정했다. 1,000여 명의 경제전문가들은 이 법안이 가격을 인상하고 생활수준을 끌어내리는 한편 미국의 수출을 해칠 것이라며 허버트 후버 대통령에게 법안 서명 거부를 촉구했다. 그러나 그 당시 연방의회는 무역(그리고 거의 모든) 분야의 주도권을 쥔 주요 정부기관이었고, 후버 대통령은 마지못해 법안에 서명했다.
그에 따른 전 세계의 반응은 지금과 유사했다. 미국의 교역국들 모두가 격분했고, 이중 상당수는 보복에 나섰으며, 미국과 가장 긴밀한 경제관계에 있던 국가들이 가장 맹렬하게 반응했다. 관세는 미국 북쪽의 이웃인 캐나다와의 관계를 뒤집어 놓았다. 보호무역주의 발발에 격분한 캐나다인들은 자체적인 관세로 강력하게 대응했다. 캐나다인들 사이에 민족주의 정서가 밀물을 이루었고 그 해 선거에서 진정한 반미정당으로 여겨진 정당이 승리했다. 이 역시 올해 치러진 캐나다 선거 결과와 기묘하게 닮았다.
학자들은 스무트-홀리 관세법의 효과에 의견을 달리한다. 지금도, 과거에 그랬듯, 스무트-홀리 관세가 대공황을 초래했다고 주장하는 학자들은 거의 없지만, 상황을 악화시켰다는 견해에는 상당수가 동의한다. 다만 관세법이 미국의 농업 부문 일자리를 보전하는데 실패했다는 주장에는 그 누구도 이의를 제기하지 않는다. 오늘날 농업 종사자들은 미국 전체 노동력의 약 1%를 차지한다.
20세기에 우리는 농업을 마치 무슨 특별한 것이라도 되는 양 애정어린 눈으로 회고했다. 무언가를 재배하는 것은 중요하다. 그래서 우리는 농부들을 보호하기 위해 전국민에 세금을 부과했다. 21세기를 살아가는 지금의 우리는 제조업에 대해 이와 유사한 견해를 갖고 있다. 무언가를 만드는 것은 중요하다. 그래서 제조업에 종사하는 8%에 보조금을 지원하기 위해 80% 이상이 서비스업 분야에서 일하는 국가 전체의 노동인구에 세금을 부과하려 한다. 이는 근본적으로 자신 있게 미래를 바라보기보다는 두려움에 젖어 과거를 돌아보는 향수의 정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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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리드 자카리아 워싱턴포스트 칼럼니스트 / CNN ‘GPS’ 호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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