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한민국 정부의 ‘트럼프2.0 대응’ 시나리오에 통상·외교안보 등에 이어 한 가지 추가해야 할지도 모르겠다. ‘비트코인과 국가경제’ 챕터다. 2021년만 하더라도 “비트코인은 사기”라고 했던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 당선인은 올 7월 “정부가 보유한 비트코인을 팔지 않고 국가 전략 비트코인 보유액의 기반으로 삼을 것”이라고 했다. 비트코인을 금이나 석유처럼 미국 정부의 준비금(reserve)으로 쌓겠다는 공약을 두고 당시엔 정치적 수사쯤으로 여기는 분위기가 강했다.
대선 승리 이후 트럼프의 행보를 보면 립서비스가 아니었던 것 같다. 로이터통신에 따르면 정권인수팀은 백악관 가상자산위원회 설립 작업에 착수했으며 이 위원회의 업무 중 하나가 바로 비트코인 보유액 구축 논의다. 비트코인 비축 법안을 발의한 공화당 소속 신시아 루미스 상원 의원은 트럼프 취임 이후 100일 내에 통과를 목표로 한다고 했다. 주정부도 동참하고 나섰다. 지난주 펜실베이니아주 의회에는 주정부 예산의 최대 10%를 비트코인 비축에 쓴다는 법안이 발의됐다.
트럼프가 노리는 정책 효과는 국가부채 감축이다. 정부 자산으로 쌓은 비트코인 가격이 오르면 현재 35조 달러에 이르는 미국의 부채를 줄일 수 있다는 복안이다. 트럼프는 8월 인터뷰에서 “누가 알겠냐마는 아마 우리가 35조달러를 갚게 될 것”이라며 “채권자들에게 비트코인 수표를 끊어주고 35조 달러를 장부에서 지우는 것”이라고 설명했다. 루미스 의원은 5년간 매년 20만 개의 비트코인을 매수해 2045년까지 미국 부채의 절반을 줄일 수 있을 것으로 보고 있다.
물론 부채 감축 효과를 놓고 논란은 적지 않다. 미국이 압류분 포함 총 120만 개의 비트코인으로 2045년에 국가 부채의 절반(약 17조 달러)을 감축하려면 비트코인 가격은 20년 뒤 개당 1417만 달러 수준이어야 한다. 이 정도 가격을 전망하는 이는 마이크로스트래티지의 마이클 세일러 창립자(1300만 달러)를 제외하면 찾기 어렵다. 부채 감축 효과를 떠나 국가 재정을 비트코인에 맡긴다는 점에 대한 상하원 의원들의 거부감도 상당하다. 게다가 트럼프가 개인 가상자산 사업을 준비하는 정황이 나오면서 진정성을 의심하는 목소리도 있다. 파이낸셜타임스(FT)는 비트코인 비축 공약이 역대 최대의 ‘펌프앤덤프(Pump and Dump·가격을 띄운 뒤 일거 매도)’가 아니냐고 지적했다.
이런 FT도 실현 가능성을 전면 부인하지는 않는다. 트럼프가 개인적 사업 성공과 국가부채 감축이라는 두 토끼를 노리는 것일 수 있다. 부채 감축 효과가 미지수라도 미국이 디지털 금융 산업을 선도하는 효과는 있다는 지적도 주목할 만하다.
미국의 비트코인 보유액이 현실화할 경우 세계경제에 미치는 파장은 크다. 미국 정부가 선택한 자산을 자국 보유액에 넣어야 하는지를 두고 각국 정부의 후속 검토가 뒤따를 것이다. 우리 정부와 한국은행도 결정의 순간을 맞닥뜨릴 것이다. 국민 여론을 고려해야 하고 글로벌 주요 자산에서 소외되는 상황도 피해야 한다.
미국 국채시장의 변동에도 대비해야 한다. 비트코인의 신뢰 부족이 미국 재정에 대한 신용 프리미엄을 높여 국채금리가 상승할 가능성도 있다. 미국 국채금리는 우리 통화정책과 환율, 기업 활동에 직결되는 문제다. 외국인 투자 증감, 기업들의 해외 자금 조달 비용 등 한국 경제의 여건을 바꿀 수 있는 변수이기 때문이다.
미국이 비트코인으로 정부 부채를 줄일 기미가 보이면 국민연금을 비트코인에 투자해 부족분을 해소하자는 주장이 나올지도 모를 일이다. 예측 사이트 폴리마켓에서는 트럼프의 비트코인 공약이 현실화할 확률을 30~40%대로 보고 있다. 미국의 차기 대통령이 우리 경제에 또 하나의 과제를 던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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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흥록 서울경제 뉴욕 특파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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