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특별시리즈 / 이민 120주년 태평양 요트횡단 원정대 ‘항해일지’
▶ 사진신부 후손 한인 3세 적극적 도움으로 급유…한인들 따뜻한 환영 ‘감격’

지난 4일 원정대원들은 이민 선조들이 잠들어 있는 오아후 묘지를 찾아 그들의 넋을 위로했다. 사진 왼쪽부터 박상희 대원, 남진우 대장, 남영돈 하와이 한인회 이사장, 조셉 장 대원, 도 유 대원

태평양 요트 횡단 원정대의 남진우 대장(왼쪽)과 도 유 대원이 사이판까지 2차 항해에 앞서 배를 정비하고 있다.
3월29일 수요일
이제 하와이까지 거리가 얼마 남지 않았다. 바람은 적당한 속도로 지속적으로 불어주고 우리를 태운 이그나텔라는 쉴새 없이 나아간다. 고비를 넘겼다는 안도감에 긴장이 풀어지고, 체력적으로도 지친 탓인지 대원들의 행동이 눈에 띄게 느려졌다.
빅아일랜드 힐로까지는 3,60마일이 남았는데 그 방향으로는 바람이 시원치 않을 것 같다. 그래서 440마일 떨어진 마우이 섬 카후루이에 가서 부족한 디젤 연료를 보충하기로 했다. 무풍과 폭풍이라는 태평양의 두 얼굴을 보았고, 항해 내내 배 한척 찾아볼 수 없는 대양의 광활함도 느꼈다.
4월1일 토요일
잠시 여유가 생겨 대원들과 그동안 항해 과정을 되돌아 봤다. 장거리 항해에선 지휘체계가 분명해야 하고 선두에서 통솔하고 지시하는 누군가가 있어야 한다. 하지만 워낙 상황이 시시각각 바뀌고, 긴급하게 대처하다 보니 가끔은 내 말투가 대원들을 불편하게 했던 모양이다. 많은 얘기를 나누며 서로에게 쌓인 오해를 풀었다.
4월2일 일요일
새벽 12시30분 마우이 카후루이 연안에 도착해서 바다에 앵커를 내렸다. 섬에서 새어 나오는 불빛이 흐릿하게 보인다. 마리나 델 레이를 떠난 후 처음으로 파도가 잔잔한 곳에서 단잠을 청했다.
아침에 일어나보니 이곳엔 디젤을 급유할 수 있는 시설(fuel dock)이 없었다. 해안경비대에 연락하니 항만 관리당국에 알아 보란다. 어렵게 이 지역 항만을 관할하는 하버 디스트릭트 매니저와 연락이 닿았다. 이름이 드웨인 성수 김이라서 한인이냐고 물었더니 그렇단다.
반가운 마음에 우리가 여기에 온 이유를 설명하니 언론 보도를 통해 소식을 알고 있었다며 비번이기는 하지만 도와주겠다고 한다. 외할아버지는 1904년 두 번째 이민선을 타고 하와이에 도착한 유도봉씨고, 외할머니가 지난 2002년 101세를 일기로 별세한 마지막 사진신부 유분조씨라고 자신을 소개했다.
그의 도움을 받아 일반 주유소에서 디젤 20갤런을 사서 급유를 마쳤다. 짧은 만남이었지만 한인 이민 선조들의 발자취를 거꾸로 거슬러 올라가는 우리들의 항해가 헛되지 않았구나라는 생각이 들었다.
카후루이를 떠나 호놀룰루를 향해 섬과 섬 사이를 지나가는데 바람이 무지막지하게 분다. 이미 호놀룰루에 와 있는 아내에게 전화를 하니 하루 종일 하와이 일원에 천둥 번개와 함께 엄청난 비가 내리고 있다고 했다.
4월3일 월요일
오아후 섬 서쪽 연안을 따라 서서히 북상하다 보니 호놀룰루의 알라와이 보트 하버에 근접했다. 오전 9시쯤 하버 매스터 사무실 앞 게스트 정박장으로 우리가 탄 이그나텔라가 들어오자 하와이 한인들과 가족들이 태극기를 힘차게 힘들며 우리를 열렬히 환영한다. “드디어 해냈구나.” 함께 고생했던 대원들의 얼굴에 자부심이 가득하다.
4월10일 월요일
1주일 동안 꿀맛 같은 휴식을 취하고 배 정비를 마쳤다, 스트리밍 라이트와 데크 라이트를 마련하고, 디젤 연료를 보충했다. 돛을 조절하는 줄을 교체하고, 날개가 부러진 풍력발전기를 수리하는 등 분주한 나날을 보냈다. 오늘은 다시 사이판으로 떠나는 날이다.
우리 원정대에 고맙게도 많은 분들이 도움을 주셨다. 미디어 스폰서인 미주 한국일보의 도움이 없었다면 이번 항해는 불가능했을지 모른다. 한국일보는 여러차례 단독보도를 통해 우리의 대장정 소식을 알렸고 덕분에 출항 전 후원금과 물품이 답지했다.
호놀룰루에 도착해서는 서대영 한인회장, 채수현 수석부회장, 론 정씨, 전재완씨 등 하와이 한인회 관계자들이 따뜻하게 우리를 맞이했다. 도착 첫날 우리를 위해 환영만찬을 베풀어 줬고, 원정대가 묵을 숙소를 제공했다. 남영돈 이사장은 바쁜 중에도 대원들을 이민 사적지로 성심껏 안내했다.
오후 2시(하와이 시간) 돛을 올렸다. 1주일 동안 정들었던 호놀룰루가 점차 우리 요트에서 멀어져 간다.
4월12일 수요일
오후 2시 현재 호놀룰루에서 200마일 떨어진 지점을 통과하고 있다. 사이판까지 남은 거리는 3,000여마일. 바람이 15~17노트 속도로 적당히 불고 있고, 간간히 비가 내리기는 하지만 항해하기에 좋은 날씨가 계속되고 있다. 중간에 무풍지대를 통과할 것으로 예상된다. 하루 평균 130마일 정도의 속도로 나아가면 예정대로 5월 첫째 주말쯤 사이판에 도착할 수 있을 것 같다.
생사를 같이 했던 박상희 대원과 조셉 장 대원이 직장 복귀문제로 호놀룰루에서 하선한 상황이 아쉽기는 하지만 큰 형님 같은 도 유 대원과 호흡을 맞춰 2차 기항지인 사이판과 최종 목적지인 인천까지 무사하게 항해를 마치겠다고 다짐해 본다.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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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리=노세희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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