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에서 2월은 흑인 역사의 달이고 2월 1일은 자유의 날이다. 노예로 태어나 남북전쟁 후에 자유를 얻은 리차드 로버트 라이트가 모든 미국인이 자유를 기념하는 하루가 있어야 된다고 믿고 추진한 끝에 미국정부에서 2월 1일을 자유의 날로 1947년 제정하게 되었다. 1976년 2월이 흑인 역사의 달로 제정되어 2월 한 달 동안 아프리카계 미국인들이 미국에 기여해온 것을 기념하는 행사가 곳곳에서 열린다.
에이브러햄 링컨 대통령의 업적은 널리 알려져있다. 하지만 노예의 신분으로 태어나 노예해방을 위해 평생을 치열하게 싸웠던 프레드릭 더글라스의 이름은 잘 알려져 있지않다. 프레드릭 더글라스는 자신이 소년 시절에 볼티모어 시로 팔려갈 때 노예 신분임을 뼈저리게 느꼈다. 주인 부인이 그에게 글을 가르쳐 주었다. 그의 주인은 그를 ‘노예 길들이는 사람’ 에게 보냈다. 채찍을 맞으며 길들여지던 중 도망하여 뉴욕에서 자유로운 생활을 하게 되었다.
노예제도 폐지를 주장하며 ‘자유케 하는 사람들’ 이라는 신문을 발간하고 있던 백인인 윌리엄 로이드 개리슨을 만난 후에 노예제 폐지운동 연설자가 되어 여러 곳을 다니며 강연했다. 1845년 프레드릭은 자신의 자서전 ‘미국인 노예 프레드릭 더글라스의 삶의 이야기’ 를 출판했다. 자신의 신분이 드러나자 그는 영국으로 갔다. 영국에서 만난 친구들이700 여달러의 돈을 주고 그가 노예신분을 벗어날 수 있게 해주었다.
1년 반만에 미국으로 돌아와 자유의 몸이 된 그는 ‘‘ The North Star’ 라는 노예 반대운동 신문을 발간했다. 1861년에 남북전쟁이 벌어지자 링컨 대통령을 만나 노예제 폐지를 건의했다. 링컨은 처음에 그의 건의를 받아들이지 않았으나 남북을 통합하는데 노예제 폐지가 필수적이라고 보고, 남북전쟁 중인 1863년에 노예 해방을 선언했다.
흑인인 마틴 루터 킹 주니어 목사의 업적은 잘 알려져있다. 1955년 12월 앨라배마주 몽고메리 시립 공영버스의 흑인 좌석차별 사건 이후, 그는 버스 보이콧 운동을 비폭력 평화 시위로 이끌어 1년 만에 국민적 지지를 얻었다.
1963년의 워싱턴 대행진을 비롯한 많은 흑인 관련 운동과 인권 운동을 이끌어 법률과 제도의 수정과 흑인의 권리를 증진했다. 1964년에 노벨 평화상을 받았고 1968년 흉탄을 맞고 살해당했다.
2월 흑인 역사의 달을 맞아 뿌리 깊은 인종차별에 맞서 노예해방 운동과 인권운동에 앞장 섰던 흑인들의 희생과 헌신적인 투쟁에 머리 숙여 깊은 경의와 감사를 드린다. 미국에 사는 모든 사람들은 아직도 남아있는 인종차별의 잔재들을 없애기 위해 새로운 인식과 지속적인 노력이 요구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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윤관호/시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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