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분’이란 은근하면서도 강렬하고 때때로 우리를 압도한다. ‘어제 밤 술 마실 땐 기분이 좋았는데 자고 일어나니 기분이 별로네.’ 자주 듣는 이야기다. 기분이 좋으면 평소 싫어하던 일도 벌떡 일어나 할 수 있다. 앞날이 밝게 느껴지기 때문이다. 기분이 안 좋을 땐 모든 일이 지루하고 견디기 힘들다. 좋아하던 일도 무의미해진다. ‘기분’이 뭘까? 왜 ‘기분’은 왔다 갔다 하는 것일까? 대개는 본인도 인식하지만 간혹 자기 기분을 설명하지 못하는 사람도 있다. 기분이 극단으로 치달을 땐 행동이나 표정으로 나타나기 때문에 오해할 여지가 없다. 오랜 시간 피로감을 느끼고 슬픈 생각에 사로잡힌 건 우울이라고 한다.
상담에서는 ‘기분’을 ‘정동’(Affect)으로 표현한다. 내담자 스스로 표현하는 것이 아니라 상담자의 탐색을 통한 평가기준이다. 화난, 짜증난, 편안한, 울적한, 들뜬, 예민한, 불쾌한, 무표정한, 부적절한, 무감각한, 제한된, 분노에 찬, 두려운, 흥분된… 등등을 살펴본다. 이야기하는 내용과 표정이 일치하는지, 슬픈 이야기를 하면서 표정은 웃고 있는지 관찰한 내용이 정동이다.
사람들은 오랫동안 ‘기분이란, 슬픈 생각이나 긍정적 환경 같은 데서 생겨나며 종류는 수백 가지가 있다’고 믿었다. 그러다가 데이빗 왓슨이라는 심리학자가 놀라운 수학적 실험기법을 통해 ‘기분은 긍정적이거나/부정적’ 두 가지라는 걸 밝혀냈다(1985). 긍정적 기분은 고양감, 활기참, 열정적 같은 것들이고, 부정적 기분은 괴롭고 두렵고 불안하고 냉소적이고 초조한 것들이다.
이후 ‘기분심리학자’들이 또 다른 이론을 내놓았다. 기분은 스트레스나 슬픈 일이 생기는 정도로만 좌지우지 되는 게 아니라 더 많은 요인들이 작용한다는 것이다. 이를테면 맑은 날씨, 건강 상태, 수면, 음식, 영양 상태 같은 생리적인 변수들도 우리 기분을 흔들어놓더라는 실험 결과를 발표했다. 머릿속에 떠오르는 생각이 기분을 만드는 게 아니라 생리적, 생화학적 이유들에도 충분히 영향을 받는다는 설명이다.
로버트 테여 같은 기분심리학자는 기분을 4가지로 정리했다. (1) 차분+활력 (2) 차분+피로 (3) 긴장+활력 (4) 긴장+피로 등이다. 차분+활력 상태가 가장 이상적인 것은 물론이다. 사람들은 이 상태에서 행복감을 느낄 것이다. 긴장+피로 단계에서는 기분이 나쁘고 우울하기까지 하다. 예를 들어 간밤에 잠을 설쳤을 때, 다이어트 중일 때, 감기 기운이 느껴질 때 기분이 가라앉았던 적이 있다면 ‘기분’에 얼마나 많은 변수가 작용하는지 이해할 수 있다.
요즘 같은 겨울철에 더 많이 긴장+피로의 기분을 느끼거나, 저녁 시간보다 아침에 더 자주 우울한 기분이 드는 사람들은 ‘계절성 멜랑콜리’를 떠올려도 된다. 일반 우울증처럼 무기력한 느낌, 슬픈 기분, 피로감, 의욕 상실은 똑같이 경험하지만 특히 겨울 아침에 많이 찾아오는 ‘계절성 멜랑콜리’는 단 음식과 탄수화물이 당긴다. 또한 밤새 뒤척이는 잠 부족보다는 잠이 너무 쏟아져서 종일 기운 없이 누워 지내기도 하고 새벽 일찍 잠이 깨어 ‘이불 킥’의 후회와 부적절한 죄책감에 시달리기도 한다. 겨울에는 햇빛과 일조시간이 부족해서 활동량이 적어지고 슬픈 기분이 더 많이 찾아온다. 기분이란 스스로 ‘으?X!’ 하면서 강한 의지를 발휘한다고 올라가거나 내려가지는 않는다. 차라리 겨울 아침의 멜랑콜리를 알아줄 누군가의 따스한 손이 도움이 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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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 케이 임상심리학 박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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